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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와 생각 Nov 30. 2021

사실; 작가의 책임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 1인 철학 출판사의 방법



글쓰기는 자신의 기억을 편집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지식, 구상한 이야기, 겪은 일을 편집한 기록이다. 편집이 개입하다 보니 엄격히 말해 글은 사실은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조작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사실을 추구해야 한다.


논문을 준비할 때, 교수와 면담이 잦았다. 교수님께서 무슨 책 읽었는지, 삶은 어떤지, 글쓰기는 잘하고 있는지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상한 교수님이었다. 그런 교수님께서 글쓰기에 대해 엄중하게 이야기한 적 있다.


“사실을 따라가라.”


분명 작가는 완벽한 사실을 기록할 수 없다. 치밀해 보이는 역사기술마저도 완벽한 사실이 아니다. 특정 관점을 가지고 있는 자료를 통해서 과거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 시간이라는 간극도 있어서 완벽한 사실을 구현해 낼 수 없다.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독일의 극작가)은 이 간극을 '건널 수 없는 구덩이'라고 불렀다. 정말 그렇다. 시간은 작가와 사실 사이에 구덩이를 파 건널 수 없게 한다. 작가는 구덩이 반대편에서 저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만들 뿐이다. 이렇게 작가는 사실을 정확히 적을 수도 없는 운명인데, 왜 사실을 추구해야 할까?


작가는 자신의 글에 대해 책임을 진다. 칼하인즈 스탁하우젠이 911 테러를 “온 우주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고 표현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글쓰기도 비슷하다. 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표현한 글에 대한 책임, 혹은 자신이 전달한 정보가 사실이라는 책임을 져야 한다 (독자는 이와 비슷하게 해석에 대한 책임이 있다). 작가의 창의적 표현에 대한 칭찬, 질문, 혹은 비난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사실을 추구하지 않은 글은 오직 비난에 열려있다. 인터넷 가짜 뉴스는 '아니면 말고' 라며 책임마저 회피한다. 


인문 분야는 거짓에 민감하다. 없는 내용을 사실인양 적을 수 없다. 나는 종종 인문 분야를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한다. 작가와 글에 대한 끝없는 칭찬, 비판과 비난의 장이다. 거짓으로 꾸민 내용은 쉽게 들통난다. 내용이 거짓일 때, 인문 분야의 작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에세이는 어떨까? 사실을 추구하지 않은 에세이는 독자를 기만한다. 없는 내용을 기술한다고 좋은 내용이 되지도 않지만, 독자들이 에세이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살까? 만약 거짓이나 지나치게 꾸며낸 이야기로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독자들이 에세이 속 가상의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둘의 괴리는 온전히 작가의 짐이다. 사실을 추구하지 않은 작가를 출판사가 방어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이는 순간일 뿐이다. 


작가는 사실을 추구해야 한다. 비록 완벽한 사실을 추구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해석은 사실을 근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며, 글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작가가 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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