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와 생각 Dec 20. 2021

산타의 그림자

My Little Philosophical Christmas #1

산타의 기원; 성자 니콜라우스


크리스마스가   남짓 으면, 코카콜라와 북극곰, 산타가 티비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어디서 코카콜라에서 산타를 만들었다고 들어본  있다. 코카콜라는 현대 산타-신화의 창시자일까? 산타는 의외로 오래된 미신이다. 기원전 3세기의 어린이와 항해사의 성자인, 니콜라우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자 니콜라우스는 280년 경에 파타라 지방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유산을 나눠주며 그리스도를 전했다. 특히 자비와 친절함에 대한 전설이 많다. 가난한 세 자매와 얽힌 설화가 가장 유명하다. 세 자매가 가난 때문에 강제로 노예와 창녀로 팔리게 되었을 때, 니콜라우스는 3일 동안 몰래 창문으로 돈을 넣어주었다. 아버지는 그 돈으로 자매가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지참금을 마련해, 노예나 창녀로 팔리는 상황을 막았다. 이 외에도 폭풍을 잠잠케 하거나, 귀신에 씐 나무를 자르는 일도 해냈다.


니콜라우스의 이야기는 널리 퍼졌다. 그는 어린이와 항해사의 성자가 되었다. 특히 그가 사망한 날로 알려진 12월 6일은 많은 물품을 사거나, 결혼하기 좋은 날로 알려졌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가장 인기 있는 성자였다. 성상 숭배를 금지하기 시작한 개신교의 종교개혁 시기에도 니콜라우스는 좋은 평판을 유지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인기가 많았다. 현대 산타-신화의 원형인 성자 니콜라우스는 자비와 사랑, 친절의 성인이었다.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와 모습이 비슷해 보인다.


현대의 산타-신화


산타 이야기와 야기되는 결과를 뜯어보면 현대 산타-신화는 성자 니콜라우스와 차이가 있다. 산타의 이미지는 익숙하다. 빨간 옷을 입은 뚱뚱한 흰 수염 아저씨, 선물을 만드는 엘프, 그리고 썰매를 끄는 루돌프와 순록 무리에 대한 이야기는 만화, 영화, 동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아무런 저항 없이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되풀이된다. 하지만 산타-신화를 되풀이해도 될지 고민이 필요하다. 동요를 살펴보자.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 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루돌프 사슴코, 동요-


루돌프는 동료 순록들에게 코가 빨갛다고 놀림을 당한다. 산타가 등장해 코가 빨가니 밤에도 잘 보이겠다며, 썰매를 끌어 달라고 한다. 루돌프는 승낙한다. 산타의 등장을 주목해보자. 산타는 사슴들과 루돌프의 충돌 사이에 중재자가 아니다. 외톨이가 된 루돌프는 보호와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산타는 어떻게 루돌프에게 접근할까? '와서 내 썰매를 끌어주렴.' 보호와 도움이 아닌 특별한 업무를 준다.


루돌프에게 썰매를 끄는 일, 간혹 등을 때리는 채찍을 견디는 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싣고 밤을 가로지르는 일이 놓여있다. 어떻게 루돌프와 산타가 선물을 나눠주는 일이 기쁘고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소외된 약자에게 가혹해 보이는 직무를 권한다. 산타는 루돌프의 아픔에 무관심하다. 산타에게 루돌프는 오직 자신의 선행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 직무를 통해 얻은 직위를 다른 사슴들은 부러워한다. 루돌프를 포함한 순록 때와 산타 사이의 긴장은, 주인과 능력 있는 노예의 관계를 반영한다. 능력이 있어야 주인에게 발탁된다. 결국 산타와 루돌프 사이의 관계는 주종관계다.


산타가 선물을 나눠주는 선행은 실제 아이들의 도덕관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산타는 아이가 선한지 악한지를 속속히 알고 있는 반신(데미갓)이다. 자신의 도덕 기준에 따라 아이들이 선물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기 원하는 아이들은 산타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 Aiken은 산타의 도덕 기준에 따라 선물을 받고, 받지 못하는 상황은, 도덕이 아이들에게 내적 동기로 작용하는 일을 방해한다고 했다. '선한 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닌 '보상을 위한 선한 일'이기 때문이다.


산타가 도덕적 기준이라면, 선물을 받은 아이와 받지 못하는 아이 사이에 도덕적 차이가 발생한다. 선물을 받은 아이는 선한 아이고,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는 악한 아이가 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님이 아이에게 선물을 주겠지만, 산타-신화와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면 그렇다). 착한 아이는 가시적인 징표로 선물을 받고, 악한 아이는 징표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실제로 선물이라는 징표는 아이의 '선함' 혹은 '악함'과는 무관하다. 특별한 개인적 사정에 따라 아이는 선물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실제로 착한 아이가 선물을 받지 못할 수 있으며, 또 악한 아이가 얼마든지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도덕과 선물은 무관하다. 하지만 문제는 산타-신화가 도덕과 결합하고, 아이 각각의 개별 상황을 환원하며 발생한다. 선물은 선행의 징표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과연 산타-신화는 매년 되풀이할만한 흥미로운 이야기 인가?


현대 산타-신화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 그 자체로 친절과 선함으로 포장된 착취다. 또한 아이의 도덕적 동기를 내면이 아닌 외부에 두도록 한다. 또 선물을 받은 아이와 받지 못한 아이 사이에 도덕적 차이를 야기한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산타-신화를 아이들에게 되풀이하며 이야기할까?





참고자료:

'Santa Claus' in the History (Dec. 14 2021) https://www.history.com/topics/christmas/santa-claus

Scott F. Aiken, 'Armed for War on Christmas' in Christmas, Philosophy for Everyone (West Sussex: UK, 2010).


사진

Esteban Lopez, (Accessed by Dec. 20 2021) Unsplash.com

작가의 이전글 급진적인 해석으로 '지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