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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꾸 Jan 03. 2023

새로운 시작

nina simone  -  feeling good

 새해가 밝았다.

15년간의 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든 면을 골고루 따져봐도 이만한 자리가 없다. 그동안 나의 시련은 지금의 자리를 위한 거였는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모든 것이 좋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곳에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25층 사무실에 앉아 레몬그라스 카모마일 차를 마시며 글을 적어 내려가는 지금의 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고 한적하다. 방황 아닌 방황 속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던 터라 지금의 이런 휴식 같은 시간은 너무나 달콤해 미칠 노릇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기특해 보였다. 나름의 시련과 고통을 뒤로한 채 얻어낸 지금의 자리는 그 누가 뭐라고 해도 편안할 따름이다.




 40여 년을 넘게 살며 가져왔던 변화중 가장 드라마틱했고, 극적인 변화였다. 한 단계 나는 성장했고, 장거리 운전을 앞둔 기사들이 자동차 시트를 만지작 거리며 최적의 편안한 자세로 세팅을 하듯 의자 위 엉덩이를 움직이는 내 모습에서 가벼움이 느껴진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길바닥에 앉아 슬퍼했던 나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을 질투하며,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 밖에 볼 수 없던 편협했던 나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웃긴 말이 있을까 생각하며 마음껏 비웃던 나다.



 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바뀌어 있다. 정말 믿기 어렵다는 말이 딱 맞다. 그동안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찬 글들을 읽으며 공감해 주었을 얼마 안 되는 구독자 분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알려드리고 싶었다.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틱한 반전의 서사시가 시작되었음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주변의 친한 사람들에게 하지 못했을 마음 속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고 위로받았음에 감사하고 싶었다. 큰 위로가 되었고, 그 위로는 나를 한 단계 위로 이끌어주었던 것 같다. 세상이 달리 보이고, 달콤한 보이스의 가수들의 노래들만이 귀를 가득 채운다.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더 이상 구구절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달리 보인다.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는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정말 무결한 것이 없는 것처럼 순수한 행복 혹은 불행은 없다. 만약 불행이란 게 없다면 한 편의 문장에 영혼이 없고 한 편의 시에 사상이 없는 것과 같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단순한 감정 표출로는 다른 사람에게 깨우침을 줄 수 없고 그들을 깊이 생각하게 할 수 없다. 불행한 인생을 경험하지 못한 삶은 완전한 삶이 아니므로 불행은 인생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그러나 불행의 이면에는 행운이 숨겨져 있고, 행복과 불행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p320>



 완전무결한 불행의 끝에서 난 행복의 시작을 마주했다. 불행했던 인생이라 여기던 길의 마지막에서 행복한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길 시작점에 서있다. 완전한 삶이 아니므로 불행은 필수 불가결함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불행의 이면에 숨겨진 행운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간사한 것이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Intro]

Birds flying high, you know how I feel

새들이 높이 날고 있어, 내 기분 알지?

Sun in the sky, you know how I feel

하늘의 태양, 내 기분 알지?

Breeze driftin' on by, you know how I feel

바람이 불어오고, 내 기분 알지?




[Refrain]

It's a new dawn

새로운 새벽이야


It's a new day

새날이 밝았어


It's a new life for me, yeah

내겐 새로운 삶이야


It's a new dawn

새로운 새벽이야


It's a new day

새날이 밝았어


It's a new life for me, ooh

내겐 새로운 삶이야


And I'm feeling good

그리고 난 기분이 좋아      








 33년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난 니나 시몬은 3살 때부터 귀로 들은 음악을 피아노로 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다. 뼈저리게 가난했던 그녀는 학업을 이어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 최초의 여성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길 바랐지만, 현실은 인종차별로 인해 첫 콘서트 때에도 백인들은 앞줄에 그녀의 부모는 뒷줄에 앉아 연주를 거부할 정도로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에 지원했지만, 니나는 죽는 날까지 본인이 흑인이었기 때문에 낙방했다고 믿었다. 레슨비가 필요했던 그녀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등 돈을 벌게 되는데, 우연히 한 바에서 피아노를 치게 된다. 피아노만 치면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장의 말을 듣고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 뒤 그녀는 점차 인기를 얻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까지 이르게 된다. 당시 그녀에게는 음악이 생계유지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생계유지의 수단 덕에 지금까지 사랑받는 인물이 된 것이다.


 64년 그녀가 발매한 앨범에서 'mississippi goddam'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은 62년 앨라배마에서 네 명의 흑인소녀들을 죽이고 한 명의 부상을 입힌 교회 테러 사건을 겨냥한, 흑인민권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곡이 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셀마 시위에서도 노래했을 정도였다. 다만 그녀는 마틴 루터 킹 같은 바폭력주의자는 아니었고, 흑인해방을 위해서는 폭력도 필요하다는 말콤 엑스의 지지자였다.






 니나 시몬처럼 거대한 시류의 변화를 위한 아낌없는 투쟁까진 아니더라도 비슷하게나마 나 또한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노동조합에서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난의 시간을 버텨내고나서 주변을 위해 힘쓰고 노력하는 깨어있는 사상의 의무를 진 노조 부위원장으로서 직원들의 복지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힘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지 않은 단체의 부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촘스키는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라는 책에서 노동조합을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에는 노동조합이 있었다. 노동조합은 가난한 사람들이 단결할 수 있고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기업과 언론이 앞장서서 노동조합을 매도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내가 니나 시몬이 흑인들의 해방을 위해 했던 각고의 노력만큼 직원들을 위해 엄청난 파급력으로 해낼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 정도의 영향력이 있을지, 능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힘들었던 회사 생활을 피해 도망간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큰게 사실이다. 하는 일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서 편하게 글이나 쓰고 앉아 있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다는 사실 또한 걱정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노조는 국가에서 헌법으로 보장하는 권리이다. 일개 노동자 하나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거나 갑질, 산업재해에 대해 항의하고 보상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노조에 대해 욕을 퍼부으며 비아냥대던 사람들이, 갑질과 부당해고 등을 직접 당해보고 노조를 통해 보상이나 구제를 받으며 노조의 존재 의의를 실감하기도 한다. 심지어 노조에 대해 부정적 시각으로 맹폭을 퍼붓던 조선일보에도 노조가 있다. 일부 시각에서는 '이제 노조가 필요한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데 기여한 것도 노조이다. 난 우리 회사의 니나 시몬 같은 인물이 되려는 것은 아니다. 아니 될 수가 없는 수준의 인물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직원들의 입장이 되어 일할 것이다. 그동안 힘들었지만, 노조 부위원장을 하면서 모든 것이 편해졌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의미는 나라는 인간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과 그러는 과정 중에도 나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고 여유로울 수 있음 일 것이다. 92%가 넘는 노조원들의 찬성에 감사드리며,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나 스스로에게도 응원을 보내고 싶다. 이제 겨우 발걸음을 뗀 어린아이 같은 나지만, 열심히 그리고 힘차게 달려 나갈 것이다.






니나 시몬이 노래한 것처럼 새로운 새벽이고, 새날이 밝았다. 내겐 새로운 삶이다.

이제 나에겐 달리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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