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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꾸 Jan 04. 2023

[playlist 1] : BLACK PUMAS

겨울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여름에 무엇을 했느냐고......


 2021년으로 기억한다. 온라인으로 개막한 CES 2021의 기조연설에서 BLACK PUMAS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했다. 영상의 하단에는 5G가 적혀있는 QR코드가 표시되었는데, 스마트폰 카메라로 인식을 하면 그들의 공연을 AR이라 불리는 증강현실로 즐길 수 있는 화면이 펼쳐졌다. 코로나로 인해 팬들 앞에서 공연할 수 없는 밴드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전 세계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이었다. 당시만 해도 증강현실에 대한 기술력이 현재와는 큰 차이가 있을 정도로 허접했던 때라 그들의 공연은 나에게 아주 센세이션했다. 하지만 눈으로 현혹시키려 했던 그들의 기조연설 내 공연은, 오히려 그들의 연주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의 감각이 귀로 집중 될 정도로 빠져들었다. 인간의 생존과 지적 활동에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는 시각을 잠시나마 잊을 만큼 온 감각이 귀로 집중 될 정도였다. 




 BLACK PUMAS는 2019년 코로나 창궐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저평가받고 있는 싸이키델릭 소울 밴드이다. 에릭 버튼과 애드리언 퀘사다, 두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9년 그래미 최우수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인기가 덜 한 것처럼 느껴진다. 신인상 후보였던 빌리 아일리쉬나 리조 그리고 릴 나스 엑스 등은 국내에서 인기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BLACK PUMAS는 아직은 덜 알려진 것 같다. 그들의 음악을 두고 롤링스톤은 "rise of a Psychdelic-soul force"라고 했으며, 여러 매체에서 두 사람의 재능을 극찬하는 평가가 이어졌다. 특히 colors라는 곡은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2억 뷰 이상 노출되었으며, 북미와 유럽 투어를 여러 번 매진시켰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2021년에는 아메리카나 어워드에서 Duo/Group of the Year를 수상했고, 같은 해 11월 그래미의 록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Know You Better (Live From Capitol Studio A)"공연은 최우수 록 퍼포먼스 후보에 오르며 총 6번의 그래미 수상 후보에 들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음악은 확실한 장르로 구분 지을 순 없지만, 확실히 싸이키델릭 소울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soul과 funk 그리고 사이키델릭적인 음을 넣은 소울 음악의 일종인데 1960년대와 70년대에 인끼를 끌던 유형의 음악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Marvin Gaye, Supremes, Temptations 등의 모타운 레코드 소속 가수들과 Sly and the Family Stone, Chambers Brothers 같은 가수들이 대표적이다. 대체적으로 soul보다는 어둡고 펑키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들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앞으로 소개할 수많은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공통점은 바로 약간의 어둠과 빠르지 않은 리듬이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groove는 덤이다. 음악의 느낌을 글로 표하는 것만큼 나에게 힘든 일은 없다.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듣는 이의 취향이라는 것이 있기에 그 취향마저 저격할 수 있을 만한 포인트를 찾지 못한다면 음악적 공감을 나누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추천하는 이유는 소개라기보다는 모집에 가깝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동지를 찾고자하는 것에 가깝다. 모든이들에게 친절할 필요가 없는 이 좋은 음악을 모든이들과 공유하기 보다는 동지들과 함께하고 싶음이 그 이유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지켜본 나의 취향이란 메이저에서는 약간 벗어난 그렇지만, 완전 마이너의 취향도 아닌 그 언저리에 결쳐있는 것들이었다. 최근 스카치위스키가 붐을 일으켜 조나워 커 블루나, 발베니, 맥켈란 같은 위스키들이 품귀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다. 하지만, 난 우드포드 리저브나, 일라이자 크레익 같은 미국 버번위스키가 좋다. 홍대 클럽에 대한민국 젊은 클러버들이 긴 밤을 지새울 때도 난 이태원의 재즈 클럽에서 새벽을 맞이했다. 뭔가 남들이 알면 좋겠지만, 알려지지 않았으면 했고, 다른 이들 모두가 추앙하는 음악에는 왠지 모를 무관심이 도지는 흔히 말하는 홍대병 환자다. 이놈의 취향은 나이가 들며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강도만이 조금 약해졌을 뿐 여전히 내 귀를 장악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오랜만에 다가온 BLACK PUMAS는 추운 겨울에 맞이한 따스한 봄의 기운 같은 음악이다. 




 2022년은 끝이 났고, 2023년이 밝았다. 하지만, 여전히 겨울은 깊어가고 있고, 봄의 기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이다. 원래 이맘때는 기분이 대개 휑하지만, 올 겨울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더욱 을씨년스럽다. 지난여름 더위가 혹독했던 터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더위 속에서야 이 무더위만 견디면 모든 게 나아질 줄 안다. 그러다 더위와 싸우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놔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딱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릴 수 조차 없는 더위에 펀치 한방을 맞고는 당최 일어설 수 조차 없는 녹다운 상태로 2022년을 마무리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내오다 발가락이 시려오자 "난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가, 왜 이토록 외로워야 하고, 배고파야 하는가" 투정을 하니 겨울이 준엄하게 야단을 친다. 


"묻겠노라, 여름에 뭘 했느냐고!"



예로부터 "겨울"은 "밤"과 "비 오는 때"와 함께 3여 (三餘)라 했다. 사색이나 독서 외에는 일할 수 없는 시기라는 인정인 셈이다. 하지만 겨울과 달리 여름은 마음도 뜨겁고, 몸도 부단히 움직일 수 있는 활동의 계절이다. 그 생산적인 시간을 헛되게 보내면 아무것도 달라지게 할 수 없고, 남는 게 없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모든 것인 가라앉고, 스스로 웅크리며, 감추게 되는 차가운 계절에 허망하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전한 한 해를 돌아보니 이제 조금 알겠다. 내가 지금 외로운 것은 내가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던 탓이다. 방이 따뜻하지 않은 이유는 땔감을 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힘겨운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지만, 가지지 못한 것과 보내는 것의 아쉬움이 자꾸 생각만 해도 곤란스럽다. 여름에 하지 않아 참담한 겨울을 맞는 것이니, 깊은 반성이라도 하며 느긋하게  봄을 기다려야겠다. 





빨리 발견하지 못해 미안하다. BLACK PU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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