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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꾸 Mar 03. 2023

[playlist 8] : Isaac Hayes

마츠모토 레이지와 은하철도 999



 은하철도 999를 기억한다. 얼마 전 원작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가 향년 85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나이의 나에게 무척이나 어려웠던 만화로 기억한다. 하지만 난 은하철도 999가 좋았다. 레슬링이나 보면서 쿵쾅쿵쾅 뛰어다니는 사내 녀석들과 놀기엔 힘이 부쳤고, 그렇다고 들장미 소녀 캔디를 보기엔 너무 유치했다. 각 회차마다 999호가 방문한 행성의 극단적 특수성을 부각해 삶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건네었던 작품이기에 어린 내가 작가의 속뜻까지 생각하며 보기에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대충이나마 작품이 주는 분위기나 내용들을 어림잡아 이해해 나갔다. 상당히 심오하고 철학적 내용들이 많았지만, 이해할 만한 수준의 내용들이었다. 999가 1000이 되며 미완의 의미를 가진다던지 하는 디테일한 부분들은 잘 몰랐지만, 역경과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내며 힙을 합쳐 파이팅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 정도로 이해하고 봤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다시 보게 된 은하철도 999는 어렸을 때 느낀 감정보단 더 큰 크기의 파도로 나의 마음에 부딪혔다.




 주인공은 미래의 지구에 사는 소년 철이. 기계 백작에게 엄마를 잃은 직후 메텔이란 여인을 만난다. 메텔은 은하철도 999의 승차권을 건네고, 철이는 영생을 보장하는 기계 몸을 무료로 준다는 별로 향한다. 은하철도 999는 증기기관차 모양이지만 우주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기차다. 지구에서 출발해 여러 별을 지나 안드로메다은하의 종착역까지 달린다. 철이는 정차하는 별에서 매번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 모험하고 성장한다. 희로애락의 순간에는 늘 메텔이 함께한다.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도와주지만 무언가를 숨기는 신비로운 동반자다.

메텔은 '은하철도 999' 극장판 1기 엔딩에서 자신을 "나는 청춘의 환영. 젊은이들에게만 보이는 시간 속을 여행하는 여자"라고 한다. 마츠모토도 2017년 방한 기자회견에서 비슷한 뉘앙스로 설명했다. "은하철도 999는 미완성이다. 1000이 되면 어른이 된다는 의미다. '은하철도 999'의 어린 철이에게는 메텔이 보이지만, 1000이 된 사람에게는 메텔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메텔을 처음 구상한 시기는 열여덟 살이던 1956년이다. 도쿄를 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는데 저편에 앉은 여인 뒤로 별의 바다가 흘러가는 공상을 했다고 한다. 마츠모토는 서른여덟 살이 돼서야 메텔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름은 어머니를 뜻하는 라틴어 '메타'의 변형이다. 마츠모토는 메텔을 든든한 조력자로 묘사한다. 철이가 처음 은하철도 999를 타고 떠날 때부터 암시한다. "젊은이가 일생에서 단 한 번 맞이하는 여행을 시작할 거야. 실패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돼. 이제 잊을 수 없는 여행을 할 거야. 너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어." 열차가 출발하는 순간 어린 독자·시청자는 철이와 묘하게 일치된다. 그들도 제각각 꿈과 비전이 있으며, 올바른 성장을 이끌어줄 인생 길잡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른에게는 자신의 시간을 사라져 버린 유년기로 마냥 되짚어가는 새로운 여정이다. 잠시나마 청춘으로 되돌려 외면해 온 사실을 일깨운다.

"인생은 언제나 알 수 없고, 의심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마츠모토의 마지막 소원은 우주에서 바라본 진짜 지구를 그리는 것이었다. 소원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계속 우주를 여행할 것이다. 아마 마츠모토는 철이, 메텔과 함께 지금쯤 바라던 우주여행을 시작했을 것 같다. 장녀인 마츠모토 마키코 씨가 발표한 내용으로 그를 추모하고 다시 기억해보려 한다.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가 별의 바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멀리 시간의 고리가 닿는 곳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항상 말했습니다.

저희는 그 말을 믿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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