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여기서도 밀려야 해? -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에서 떠돌던 수저 계급론은 이미 국민 정서에 깊이 스며들어 이제는 매체에서, 일상에서 늘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태어난 가정 환경에 따라 개인을 흙수저와 금수저로 나누고,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본, 인맥, 선택의 폭이 다름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타고난 계층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울타리를 넘어설 수 없다는 패배감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타인의 소셜 미디어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카페인 우울증(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 텅장(텅빈 통장), 있어빌리티(있어보이는 능력)등의 용어들이 상용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우울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를 반증한다.
한때 ‘부모 찬스’라는 용어가 유행했었다. ‘부모 찬스’란 어떤 자녀가 혈연인 부모의 명망, 인맥, 부, 권력 등 사회적 배경의 도움으로 이득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언론에 보도된 고위층 자녀들의 불공정 사례를 지켜본 사람들은 진입 과정의 공정성마저 부모 찬스에 의해 훼손됐다며 분노했다. 우리나라는 자녀 문제, 교육 문제에서의 불공정에 민감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경쟁이 심한 입시 체제와 학교에서 내 아이가 겪는 상대적 기회 손실은 사회 전체에 대한 불공정과 부패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긴 팬데믹을 거치며 국민 경제 수준은 더욱 양극화되고 있고 국민들의 정서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떠도는 ‘개근 거지’라는 단어가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가족들과 여행을 못 가는 아이들이 가정체험학습을 한 번도 쓰지 않아 결석이 없다는 걸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는 친구끼리도 계급을 나누고 부모의 자산 수준에 따라 친구로 사귀어도 될지 함께 어울리지 않아야 될지를 부모가 판단하고 아이에게 지시한다고 한다. 이런 가정 교육과 학교 분위기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정서와 가치를 갖고 살아가게 될지 걱정스럽다.
우리 사회의 계층 간 격차가 커질수록 체념과 무기력이 고착화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국민 정서가 확대되면서 사람들이 개인 이기주의에 매달린다는 점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자녀에게 문제가 닥치면 극도로 내 아이 보호하기 모드로 돌변하는 것을 본다. ‘내 아이 상처는 참을 수 없다!’ ‘내가 여기서도 밀려야 해?’ 라는 피해 의식과 분노가 들불처럼 퍼지는 것 같다.
조금만 순차적인 생각으로 상황을 살펴보면 선생님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고 우리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 위해 어른들이 어떤 모습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 일인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겠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언행으로 상황을 극으로 치닫게 만들곤 한다. 학교에 와서 소리를 지르고 책상을 치면 본인의 분이 풀릴지 모르겠지만 학부모의 언행을 지켜보는 교사는 저렇게까지 과도한 분노 표출의 원인이 대체 무엇인지 의아할 뿐이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어려움에 직면한다. 억울한 일도 당하고, 속상한 일도 겪고, 상대 부모에게 단단히 한 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도 불끈 솟지만 자식을 키우는 같은 입장이라 서로 이해하고 보듬으며 갈등과 오해를 풀었던 시절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른들의 성숙한 문제 해결 모습을 곁눈으로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이 모든 문제 해결 과정이 자신도 모르게 학습된다.
좀처럼 내 의지대로 풀리지 않는 일에서 어떻게 타인과 갈등을 조율하며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내가 옳다고 여기지만 한 발 물러나 상황을 바라볼 줄 아는 힘과 여유가 필요한 이유를 아이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보고 깨닫는다. 감정에 치우진 해법은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고 설령 싸움에서 이겼을지는 모르지만 내 아이가 무엇을 보았을지, 무엇을 깨닫고 배웠을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