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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20. 2023

파란, 기억여행자 8

저는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여자는 조심스럽게 부엉이에게,     


왜 모자를 버리시고, 이곳에 머물려고 하세요?     


부엉이는 두 눈을 다시 깜박이며,     


나는 이미 살 만큼 살았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죠. 이곳에 오기 전에는 늘 언제 저 세상을 가나 생각하거나, 지난날을 생각하며 살았어요. 현재는 없었어요. 현재는 그저 죽음이 유예된 시간일 뿐이었지요. 기억도 점점 흐려지고 있는 내가 과거의 행복한 순간에 머물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우는 꼬리로 몸을 폭 감싸며 다시 부엉이에게,      


그런데, 왜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어요?     


부엉이는 얼굴을 한 번 돌리더니,     


네... 그래요. 이곳에 오면, 행복의 순간을 만나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주인아주머니도 그렇고, 저 독수리도 그렇고, 실망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요. 내 기억이 찾은 행복의 순간이 어떤 것이지도 궁금했는데... 그래도 정말 그 순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엉이는 화가 난 듯 깃털을 세웠다. 나는 온몸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작고 작은 파랑새가 된 탓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순간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여우는 얼굴을 들어 부엉이를 바라보았다.     


부엉이는 다시 숨을 가다듬고...     


내가 스무 살. 딱 스무 살이 된 때였어요. 나는 부모님이 모두 바쁘셔서, 할아버지 손에 자랐어요. 부모님이 나에게 사랑이 없으셨던 것은 아닌 것 같았는데, 워낙 바쁘셔서... 할아버지가 정말 잘해주셨죠. 그 사랑으로 나는 힘든 순간들을 잘 버틸 수 있었어요. 그런데, 행복모자가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로 나를 데려다주었어요.     


나는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도대체 행복 모자를 믿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엉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우는 조용히 일어나더니 말했다.     


행복모자가 보여준 장면에 얼마나 있으셨어요?      


그곳으로 간 순간, 바로 나와 버렸어요.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모자를 버렸어요.     


여우는 고개를 갸웃대며 말했다.     


머물고 싶지도 않은 순간을 만났는데, 왜 모자를 버리셨어요?     


처음에는 행복의 순간에 머물고 싶어서 여기에 있을 생각을 했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나니, 행복이고 무엇이고, 찾을 가망이 없어 보이니... 다시 돌아가도 내 생활이 얼마나 바뀔까? 하는 생각에... 그런데 아까 그 순간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왜 물어보나요?     


행복모자가 보여주는 순간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저도 행복 모자를 쓰고 기억여행을 갔었어요. 다시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순간으로 나를 데려갔어요. 바로 그날은 오랫동안 만난 친구와 헤어진 날이었죠. 너무 슬퍼서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어요. 그리고 벗어나려고 했는데, 그래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장면에서 나와 그 친구를요. 그런데, 행복 모자가 당시에는 제가 볼 수 없었던 장면을 보여주었어요. 제가 사랑했다고 믿었던 그 친구는 저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잘 헤어졌던 거예요. 저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제가 저 자신도 너무 몰랐고, 그 친구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너무 웃겼어요. 그런 사이에서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그리도 많이 주고받았을까?... 한 참을 울다가, 또 웃다가... 여행 갔다 오고... 며칠을 그렇게 보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마음이 편해지고 좋았어요. 내가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그저 잘 모르고 잘 안 맞는 사람과 부딪치느라 그런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저는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튼 그 장면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다시 봐야 해요. 그래서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행복모자가 그 장면을 보여준 이유에 대해서요. 다시 가봐야 해요!       


여우는 독수리를 깨우러 갔다. 기억의 밤이 지나 다시 낮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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