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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16. 2023

파란, 기억여행자 6

누군가를 간절히

나는 얼떨결에 모자를 썼다. 여자가 잡아끄는 그 속도에 맞추어 달리기 시작했다. 

눈앞은 강한 빛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별안간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런! 이게 뭐야!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자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한 여우가 모자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나를 둘러보았다. 파란 깃털을 보니 파란 새가 된 것 같았다. 깃털 하나하나, 보송보송한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기분도 정말 가볍고 좋았다. 어릴 적 날아다니는 꿈도 많이 꾸었는데, 이런 느낌인지 몰랐다. 이렇게 즐거운 나와는 달리 여자는 불만이 많았다.     


이상하네. 저번에도 다들 새로 바뀌던데, 아까 여행한 사람들도 다 새였는데, 왜 나만 여우야? 동물원에나 가봐야 하나. 아니 이런 꼴로 도대체 어떻게 기억을 찾아가지? 아이고... 참... 현재나, 과거나... 나는 왜 이러나?     


망설이지 말고 뭐든 당장 해보라 하던 조금 전까지의 당찬 여자 모습은 어디로 가고, 한숨을 푹푹 쉬며 힘 빠져 있는 여자를 보는 내 마음은 난감해졌다.     


아... 모자가 이렇게 모습을 바꿔주는 거군요. 전 몰랐어요. 그런데, 보통 새가 되나 보죠? 전 처음이라... 여우도... 여우도 좋지 않나요?      


내가 파란 새가 된 것은 좋았는데, 좋다는 표현은 할 수 없었다. 나는 뭔가 위로는 해야겠고, 자꾸 목소리가 작아졌다.      


                            여우 앞에 새라니... 이것도 설정이 좀 이상하네. 같이 갈 수는 있는 건가?     


나는 혼잣말하며, 갑자기 펼쳐진 이 상황이 좀 우습기도 하고, 장난 같기도 했다.     

시무룩해져 모자만 바라보던 여우가 걱정스레 하늘을 쳐다본다. 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를 보고 다급히 외친다.    

 

빨리 이쪽으로 피해요. 뭔가 날아와요.     


여우가 나를 물더니 한쪽 수풀 속으로 냅다 던졌다. 자기도 얼른 수풀 속으로 숨어들어 꼬리를 감추었다.      


검은 독수리 떼가 날아들었다. 숲 속 이곳저곳을 살폈다. 나는 몸을 더 움츠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아무도 없다고 느꼈는지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거리며, 무언가를 이리 던지고 저리 던지며 받아넘겼다. 그러다 그 무엇은 한 독수리의 입으로 꿀꺽 들어갔다. 그 무언가를 한 입에 해치운 독수리는 재빨리 날아갔다. 다른 독수리들은 서로 아우성치며 그 독수리를 쫓아 날아갔다. 나는 퍼덕 거리는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가만히 그대로 얼음처럼 있었다.     


뭔가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다. 잘 못 들어온 세계 같았다. 빨리 나가고 싶었다. 이런 거친 세상에 이 작고 작은 파란 새라니...     


여우는 또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저 멀리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왜 그런 거죠? 같이 좀 가요. 제발!      


나는 수풀 속에서 급히 나오다가 나뭇 가지에 날개가 걸렸다. 나오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져 여우를 크게 불렀다.     


누군가를 이렇게  간절히 필요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본 적이 있었던가? 나를 도와달라고...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한 것 같았다. 꾸역꾸역 혼자 해내야 했고, 도움을 청하는 것은 두려웠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생각났다. 하지만, 빛보다도 빠르게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그 누군가를 떠올리려 했을 때,     


여우가 되돌아와 나를 또 덥석 물더니 뛰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저기요. 근데, 난 날 수 있어요. 이렇게 물려 다니는 것이 아니고요.     


여우는 나를  힐끗 보더니 공중으로 뱉어버렸다.     


그럼 날아요. 날 따라와요. 좀 높이 날면서, 나를 따라와요! 저기 가이드가 있어요. 우리가 온 것을 알려야 해요.


저기 검은 점처럼 날고 있는 무리가 보였다.

      

아까 그 독수리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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