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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여자로 만나면.

by 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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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 분홍색 박스 알지, 오늘 그 박스에 있는 사진이 보고 싶은 거야, 그래서 거실에 박스를 갖다 놓고 봤단 말이야, 근데 우리 어릴 적 사진을 보는데 눈물이 나는 거야"

옛날 사진을 보며 울었다는 딸의 말은 처음이 아니었다.

잠들기 전 의식처럼 치르는 종아리 마사지를 하던 중이었다.

사진 이야기를 꺼내며 멈췄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으!"

힘 조절에 실패한 딸은 미안하다는 듯 상체만 숙여 나에게 안겼다.

"엄마 사랑해"

그 시절 내가 딸에게 수없이 했던 사랑 고백과 똑 닮아있다.

딸의 달콤한 사랑 고백이 엄마의 한 시절과 함께하고 있었다.

내가 나에게 느끼는 애틋함을 딸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리운 건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데 그리운 게 많으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

"조그만 상에 케이크 하나 놓고 언니랑 둘이 노래 부르며 찍은 사진 있단 말이야, 기억나 엄마?"

"응 알지, 뭐 말하는지 알겠어."

정말로 어떤 사진인지 바로 알 것 같았다.

"그 사진 보면 엄마랑 같이 찍은 사진도 있어, 엄마 머리 묶고, 곰돌이 그려진 반바지 입고, 히히"

"응 알지~ 그거 나희 엄마랑 시장 가서 같이 사 입은 거야~"

"진짜? 그걸 기억해?"

신기했다. 그 반바지의 출처까지 기억이 났다. 진짜 그게 기억이 났다.

"신기하다 엄마, 어떻게 그게 기억나지?.... 근데 엄마, 그때 엄마 보면 너무 피곤해 보여~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

딸이 딸로서가 아닌, 같은 여자 입장에서 엄마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뜨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나도 그랬다.

엄마를 여자로 들여다보면서부터 무심히 지나치던 엄마의 일상이 새로이 인식하게 했다.

지나간 것들이 갑자기 소중해지는 따뜻함이기도 하였고 미화된 포장이기도 하였다.

때로는 과거의 향수와도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그 시간과 지금의 간극을 잇는 풍경 같은 엄마와 딸은 여자이다.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그날의 소리와 바람, 찰나의 냄새, 어수선함이 만들어 낸 자연스러움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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