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hobbysumer
이 정도면 그냥 공부가 취미인 것 같긴 하다.
예전에 친한 대학원 동기한테 '저는 뭘 잘하는거 같아요?' 하고 물어본 적 있다. 그랬더니, '넌 공부 잘 하잖아.'..그땐 나한테 장난하는 줄 알았다. 시험을 잘 친다는 말인가? '공부를 잘 한다...'고?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영어 스피킹 연습을 본격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 영어학원에 등록하였다.
국내에서 공부하였지만 영어를 나름 하긴 했다. 다만, 매번 쓰는게 아니니 처음에 버벅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직무 상 영어회화를 많이 하진 않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바로 나오지 않아서 좀 짜증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해서 매일 밥 먹는다 생각하고 다시 시작을 하게 되었다.
어제 첫 수업을 하였다. 1:1 학습을 위하여 선생님과 나만 앉아있는 자리. 기본 실력을 파악하기 위함이라며 나에세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하셨다. 역시나 버벅되었지만 간단히 소개를 하였다. 나 같은 경우 어릴 적 다른 애들 학원 다닐 때 엄마는 영어 과외를 시켜주신 덕에 발음과 억양은 나쁘지 않았고, 영어에 대한 위화감도 덜한 편이긴 하다.
다른 분야 학위 준비를 고민한다는 말에 나보고 'hobbysumer' 라고 표현을 해주셨다.
이미 박사학위를 딴 내가 대학원을 다시 준비한다는 말씀에 매우 놀라워하시며 해주신 표현이었다.
그리고, 영어 면접 문장 활용을 하는 중에 학부 때 활동했던 경험과 직무를 연계하는 내용을 말하는 기회가 있었다. 대학원 시절도 아니고 대학 시절이면 뭐...거의 갑오경장급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고 좀 유치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때 활동했던 동아리 활동에 대해 말하였다. 몇 십년 만에 내가 대학생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중에 내가 갑자기 20대 대학생이 되어 그 때의 활동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광장에서 동아리 공연을 하고, 캠퍼스를 오가며 친구들과 학식 먹으면서 다음 수업 준비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밤새면서 편의점 딸기우유와 빵 사먹다 위염에 걸린 기억, 졸업 작품 발표하고 혼자 짱박혀 깊이 잠든 나를 친구들이 발견해서 집에 보내준 기억..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던 기억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거의 20년 가까이 잊고 지내왔던 학부 시절의 나를 5분 가량 면접 내용으로 발표하는 중에 생각해내게 되는 순간이었다.
수업을 마무리 하면서 선생님이 오늘 수업 어떤 거 같냐고 물어보시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컥하였다. 아이 낳고 박사논문 힘들게 준비하고, 학위 받고도 회사 일로 치여서 내가 뭘 하며 사나 하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망망 대해에서 한 선원이 10년째 풍랑과의 싸움을 해오고 있었던 듯 하다.
영어 팝송도 좋아하고, 미술관 관람도, 연극 공연도 좋아하는데 아이와 일로 내 자신을 돌보지 않았구나. 돌보는 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며 내 자신은 오로지 일 열심히 해야만이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 것 같다. 영어 수업 정도는 평소에 들을 수 있었던 거 같은데, 너무 내 자신을 일 속에 매몰시켜버렸구나. 그게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내가 없는 내가 10년동안 치열하게 살았구나.
예전 박사논문 심사를 받으면서, 심사위원 코멘트를 디펜스하는 중에 '이래서 박사 이상의 학위가 없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자신이 가루가 되어버리는 느낌을 몸소 느꼈다.
이러한 중에 다시 대학원을 준비하는 건 이건 공부 덕후 인증이다.
not 학위 콜렉터, but hobbysumer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