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세포들>을 보고...
드디어 유미의 세포들 시즌2 시청을 마쳤다. 유미의 세포들 시즌 1을 시작했을 때, 웹툰에서보다 세포들이 3D로 정말 귀엽게 나와서 재미있게 보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로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한국말로 말한다는 게 참 신선했다. 입모양이 딱 한국어로 맞아떨어지다니! 게다가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의 조합이라는 게 매우 신선하지 않나 싶다. 원작 웹툰을 딱 한 번 정주행 했기 때문에, 드라마가 시작하면서 웹툰도 다시 정주행 하기 시작했더랬다. 그런데 아직 그 정주행이 끝나지는 않았다. (허허)
유미가 귀여운 걸 좋아하듯이 나도 귀여운 걸 좋아해서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시즌 1을 볼 때 불안 세포를 참 좋아해서 불안 세포가 나오면 여러 번 돌려보았던 것 같다. 그럴 때 느낀 것은 유미의 프라임 세포가 사랑 세포였다면, 내 프라임 세포는 불안 세포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사랑 세포가 프라임 세포인 데에는, 사랑하고 연애하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시즌 2에서 유미가 사랑 세포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하며, 작가 세포에서 프라임 세포 자리를 넘겨주라는 장면이 나왔을 때 울컥했다. 유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뭔가 깨달음을 얻으며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뀔 때마다 각자의 프라임 세포도 바뀌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나의 커리어와 관련된 세포가 프라임 세포가 되었으면 좋겠다만 그게 과연 최선일까?
프라임 세포는 초능력을 발휘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여, 다른 세포들의 의견을 배척하기도 한다. 오히려 프라임 세포 같은 것이 없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지혜 세포 같은 게 있다면 그 녀석이 프라임 세포가 되는 것이 좋겠다.
유미의 세포들은 모두 유미 편이다. 모두 애정 어린 눈빛으로 유미를 바라보며 사랑하고 있다. 유미의 세포들은 유미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 이외에 그 누구가 나보다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보다 자신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가 쉽지 않다. 만약 프라임 세포가 된 불안 세포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것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나 자신의 세포들의 목소리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어떨까? 미움받지 않으려는 마음도 자신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만, 사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패턴이 계속된다면, 건강한 세포마을이 되지 못할 것이다. 외부인의 지배를 받기 쉬운 꼴이 될 것이다.
위 제목에 캡처한 사진은 유미의 이성 세포가 유미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인데, 그 이성 세포의 눈빛이 참 좋았다. 나도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즌 2 마지막 회에서 감성 세포가 노래방으로 노래하는 장면도 정말 좋았다. 노래 전체를 감성 세포가 노래해 주었다면 정말 정말 정말 좋았을 것 같다. 그 장면만 열 번 넘게 돌려보았다. 이성 세포가 졸리지만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도 좋았고, 몸을 흔들흔들거리면서 눈은 내리깔고 노래를 부르는 데 별거 아닐 수 있는 이 장면이 왜 그렇게 좋은 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여러 번 돌려볼 예정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시즌2가 시즌1보다 텐션이나 분위기 면에서 재미가 떨어졌던 것 같다. 바비 역할을 맡은 진영님도 정말 잘 생기고 연기도 잘 하지만, 시즌 1에서 웅이의 세포의 세계관이 워낙 튼튼하게 세워져있던지라 두 번쨰 등장한 바비의 세포의 세계가 워낙 힘을 쓰지 못했던 것 같다. 바비의 세포들이 등장할 때에는 초록색 필터가 등장해서 공기를 초록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뭔가 깨끗하지 않고 찜찜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건 아마도 의도했을 것 같다. 시즌 2에서도 구웅이 등장하는데, 세포들이랑 더 친근해서 그런지 구웅이 등장하면 더 재밌었다. 바비 역할을 받은 진영님은 좋아졌지만, 바비는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라 그런지 드라마에서 아무리 비호감 색깔을 지우려고 했어도 어쩔 수 없는 원작 웹툰 팬의 감정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바비 역할 맡으신 진영님은 이번 드라마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정말 다정한 말투를 어쩜 그렇게 잘 표현하는 지 듣는 사람을 눈 녹이듯 다 녹여버린다. 구웅은 개인적으로 "으이구"하면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데, 아직 유미나 웅이나 아직 서투를 때 성숙하지 못했을 시기의 사랑을 둘의 관계에서 잘 표현한 것 같다. 유미는 연애하면 1순위가 상대로 바뀌지만, 구웅은 여전히 자신이 1순위라는 것을...그리고 그 차이가 서로를 엇갈리게 한다는 것을 잘 표현해주었다. 특히 웅이가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다고 말을 다 잘라내고, 짧은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 것들이 오히려 갈등을 막거나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해결할 것은 드러내고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비가 유미에게 일종의 환승연애를 한 것이 결국 나중에도 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유미나 바비나 각각 연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을 넘는 친절을 베풀고, 조심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마음을 주기도 하는 등 위험한 연애를 즐기는 타입인 것 같다. 그렇게 유미에게 다가온 것처럼, 그렇게 유미를 떠날 수도 있는 것이다.
유미의 세포들이 TV보다는 티빙 플랫폼 위주로 방송되었고, 시즌2의 경우에는 티빙에서만 볼 수 있었던 터라 좀 더 표현의 자유가 있었던 것 같다. 원작 웹툰에서보다 애정씬이 많아서 더 자연스러운 연인으로 보여서 좋았다. 드라마의 대부분은 원작 웹툰을 그대로 살리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들이 보였다. 무려 과자 패키지까지 똑같은 디자인으로 만들고, 구웅이 처음 등장할 때 입은 옷도 똑같이 디자인하고, 웅이의 멍멍타임 게임도 똑같은 컨셉으로 만들고, 유미의 최애 작가님이 이동건 작가님(원작웹툰 작가)으로 언급되는 등 원작에 대한 존중도가 매우 높은 드라마여서, 중간에 바비 관련 스토리가 꽤 많이 변형되었음에도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시즌 2가 시즌 1보다는 조금 늘어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이 있었던 것 같다. 구웅 스토리가 훨씬 길어서 그런건가 싶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표현한 방식의 내면이 정답은 아니지만, 자신의 마음과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만드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자신의 삶의 주인공은 자신 뿐이라는 점도 잊지 않도록 해준다. 이 드라마에 남자 주인공은 없고, 주인공 유미만 존재하듯이 말이다.
자 그러면 참하게 시즌3을 기다려보자. 시즌3이 나와도 최대한 아껴보아야지.
[+] 유미가 독일문학 전공했다는 건 몰랐네. 드라마에서 작가 프로필에 독일문학 전공이라고 나와서 깜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