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에 학기를 시작한 후 75일 정도가 흘렀습니다. 전체 수업 일수가 190일 정도 되니 거의 절반 가량 함께 지내온 셈이죠. 학기를 시작하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3월이 제일 시간이 느리게 가고, 4월은 조금 빨라지며 5,6월이 지나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합니다. 9월이 되고 늦여름의 더위가 가실때쯤엔 이제 곧 학기말 준비를 시작할 시기가 되지요.
담임 교사로서 5월 정도가 되면 우리 반 학생들에게 아주 '어려운 시험'을 볼 것이라고 미리 예고를 해둡니다. 그럼 도대체 어떤 시험인데 저렇게 선생님이 겁을 주냐며 잔뜩 긴장하곤 하는데요, 답이 정해져 있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표현해야 하기에 어려운 시험이 맞긴 하지요.
시험은 바로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보통 스승의 날 즈음에 진행하는데 올해는 '교생 실습'을 준비하느라 조금 늦었네요.
이 시험의 출제 범위는 '담임 선생님과 3월 2일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시간'입니다. 난이도는 중, 상, 최상이 섞여 있구요, 솔직한 응답을 위해서 이름은 쓰지 않습니다. 물론 학생에 따라서 이름을 안쓰는게 왜 솔직함과 연결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학생도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이 시험을 보는 이유는 담임 교사로서 수업을 매개로 학생들을 매일 만나는데 과연 얼마나 전달이 잘 되고 있는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임하는지, 어떤 수업을 즐거워하며 더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일지를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시험지를 보다가 몇 개 눈에 띄는 장면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아래 시험지는 '학습된 무기력' 때문에 수업 시간에 종종 멍하니 있는 학생이 작성한 거에요. 멍하니 있는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여 어르고 달래고 부모님과의 상담도 했었는데... 부모님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시고 나서 아이의 지능과 관련된 부분이 7~8세 수준으로 나왔다며 아주 힘들어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 검사 결과는 아이의 참여도에 따라서 다르게 나올 수 있는 부분이며 제가 보기에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 드린적이 있는 학생인데요,
이 학생이 선생님이 좋다고, 수업 중 선생님의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자기 자신이 수업 시간에 경청하지 않고 딴짓을 해서 그렇다고 응답을 했네요;;; 아.. 이런..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지는 그런 느낌.
어머니께서 그러셨어요. 아침마다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그래서 아침마다 전쟁이라구요, 그래서 제가 일단 학습적인 부분은 좀 제쳐두고 제 시간에 학교 오고, 시간 되면 교과서 준비하고 수업할 준비를 마치는 것에만 집중해 보자고 말씀 드렸어요. 그래서 아이와도 9시까지는 무조건 와야 하며, 9시까지 오면 너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랬더니 예전보다는 9시 안에 등교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오늘은 무려!! 수업 시간에 발표도 1번 하고, 수업 주제와 관련된 익힘책 2쪽도 다 풀었습니다. 아... 교사로서 가질 수 있는 보람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또 눈에 띄는 응답은 아이들의 눈을 잘 쳐다본다는 것인데요,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학생들을 이끌어가고자 했던 제 열망을 알아주는 학생이 2명이나 있어서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담임교사를 1년하면 아이들은 담임 교사를 닮는다고 하고, 담임 교사는 아이들을 닮는다고 하죠. 새 학교에 와서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이라 시간이 지나도 꽤 오랜기간 동안 제 추억 속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응답을 토대로 또 오늘 하루, 그리고 내일 하루를 준비해야겠네요. 흘러가버린 시간을 나중에서야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