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바톤 핑크> 리뷰

창작자 스스로의 연민과 고민 혹은 자기들도 답을 찾을 수 없다는 한탄

호텔이라는 공간, 즉 바톤의 내면이라는 공간은 알 수 없는 공간이다. 찰리가 머무르는 층에는 분명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복도에 놓여진 신발들은 저 층이 단순히 찰리와 바톤만 있는 것은 아니겠구나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바톤이 만난 사람은 오로지 찰리 뿐이다. 바톤이 원하는 창작물 속 주인공 같은 찰리 뿐이다. 바톤이 찰리만 만난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바톤이 선택한 것일까? 바톤의 선택일 것이다. 바톤은 내면에서 나는 저런 캐릭터만 만나고 저런 이야기만 원해 이런 것이다. 옆방에 찰리라는 아주 평범한 이름에 보험을 파는 아주 평범한 직업을 가진 바톤의 원하는 작품 속 주인공 같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는 결론에 가서 평범하지 못하다. 찰리가 평범해지지 않는 순간 바톤은 작품을 완성한다. 자신이 원하는 가장 완벽한 작품을. 자신이 원하던 평범한 작품은 사라진다. 자신이 동경했던 평범함이 사실이 비범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평범을 원했지만 비범의 순간에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창작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창작하는 가 아닐 것이다. 온전히 자신의 작품을 만들려는 순간, 고립을 했지만 작품은 되지 않았다. 성경을 보고 존경해머지 않았던 작가를 만났다. 성경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존경하던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달리 붕괴되는 순간이 되면서 작품은 완성 되었다. 바톤은 뜯어지는 벽지를 붙이며 자신의 내면이 온전하고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벽지가 뜯어졌는지 신경 쓰기에는 너무 혼란스러운 그 때 였다. 결국  창작자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환경에서 만든다고 아닌듯하다. 그리고 창작자의 작품은 온전히 자신의 생각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서도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호텔을 나가서 세상은 또 다른 공간이었다. 오히려 작품을 고뇌만 하고 있을 때 열심히 지원하고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칠 것 같은 행동을 보여준 사장은 작품을 완성하자 다른 상황 다른 태도가 되어 있다.  자신만의 내면 즉 호텔을 벗어난 순간 다른 실재하는 현실이 된 것이다. 현실도 내면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창작자가 원하는 대로 가지 않았다. 내면을 벗어나도 창작자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제작자의 돈과 생계, 현실은 창작을 그저 그런 도구로 밖에 안 보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해변은 바톤이 알게 모르게 원하던 무의식의 바람 혹은 기대일 것이다. 무료한 내면에서 벗어나 있는 저곳을 향해. 하지만 해변은 달랐다. 영화배우냐고 물어도 저놈 뭐지하는 표정만을 짓는 사람이 있는 그런 곳이다. 바톤은 창작이, 현실이, 내면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바톤은 계속 바톤 핑크일 것이다. 자신의 창작이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니였고, 자신의 창작행위는 자신을 도구를 쓰는 방식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어도. 그는 끝내 상자를 열지 않았다. 상자 속에 있지 모르는 무언가의 현실, 내면이든 외면이든 그 것을 바톤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바톤은 아마 계속 그럴 것이다. 우리 내 창작자들의 현실이 그러하듯이다. 꿈을 꾸는 창작자들이여.

매거진의 이전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