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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Oct 27. 2022

시간이 지나도 늘지 않는 것.

잘 하는 게 없다.

기자라는 직업을 하면서 가지는 가장 큰 두려움은 잘 하는 것도, 잘 아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능력 있었던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다고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저 월급이 목표였기에 열정은 없었고 조용히 보이지 않게 사는 게 목표였다.

혹자는 어차피 할 일 열심히 하면 안되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하기에 나는 연료가 부족한 사람이다.

다행히도 부족한 연료에 대해서는 나에게는 주관적인 핑계를 넘어서 객관적인 핑계도 있다. 오랜 기간 다녀온 병원과 약이 좋은 핑계 하나이며, 슬프게 닥쳐버린 집안 사정도 또 다른 좋은 핑계다.

주관적인 핑계들 뿐이라면 나조차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관적인 핑계는 물론이고 객관적인 핑계마저 있으니 너무도 완벽하게 나를 설득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핑계들을 차마 입으로 꺼낼 수 없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병원에 다녀왔고 약을 먹었다면 좋아할 회사는 없을 것이다. 집안의 일로 연민을 받는 것은 그다지 좋은 전략이 아니라는 생각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핑계는 어디까지나 내 안에서만 맴돌고 타인에게 그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핑계들은 그저 나의 연료의 부족을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딱 그 정도의 만족만 있을 뿐이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내가 가진 잘 하는 것은 없다. 누군가는 기자의 능력이 글쓰기라고 하지만 난 글을 잘 쓰지도 못한다. 또 다른 장점이라고 하는 인맥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있지도 않다.

스스로 절대적 'I'라고 생각하며 그 것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상황에서 던바의 수에서 말하는 친교의 범위를 가뿐하게 넘어버리는 관계는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다. 점심 약속을 하자는 연락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이상한 기자생황을 열심히 하고 있다. 기자가 되고 나니 어느 순간 가장 부러운 사람은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이 되어 버렸다.

글쓰기는 어떠한가 어떻게 하면 좋은 기사를 쓰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쓴 기사는 잔혹한 칼부림에 퇴고 당하는 게 기본값이다. 겨우 맞춤법을 맞추고 복문 대신 단문을 쓰는 수준이다. 여전히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 다른 기자들의 글을 많이 보고 분석하면 된다고 하는데 '잘' 쓴 기사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글쓰기가, 기자의 글쓰기가 다른 글쓰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방향을 틀어서 에세이를 쓰고, 소설을 쓰고, 평론을 쓴다면 나는 잘 쓸 수 있을까? 글에 담긴 콘텐츠는 차차 생각하더라도 글을 쓰는 기술이 늘었는지, 내가 적은 말들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기자는 아는 것이 많으니 혹은 듣는 것이 많으니 그래도 전문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는 아는 것이 없다. 다만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뿐이다. 전문가면 그래도 다행이다. 공보관, 대변인, 홍보팀 등 특정 집단의 입장을 전달할 뿐일 때가 더 많으니. 그리고 시간이 되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이면 부서를 바꾸고 새로이 배운다. 물론 돌고 돌아 전에 했던 부서로 온다고 치더라도 빠르게 흐르는 세상에서 수년 전에 지식이 혹은 아는 게 먹힐까도 의문이다. 그 지식의 대부분은 네트워크, 즉 인맥에 관한 부분이라는 점도 슬프다. 지식이나 산업에 대한 이해라기보다 그 자리에 누가 있었던가에 대한 지식이다. 물론 나의 짧은 기자 생활에서 선배들을 지켜보면서 내린 정답이니 잘 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없는 열정에서 쏟아낼 수 있는 것은 없는 걸까. 그저 25일에 통장에 돈이 제대로 왔는지만 기다리는 생활인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특히나 초심조차 없는 그래서 열정의 흔적조차 없는 것이라면 더더욱 심할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답답하다. 이대로 무능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선배가 될 게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어디선가 회사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을까봐 지금도 귀가 간지럽다. 

계속해서 이곳에서 시간이 흐른다면 나는 분명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월급만 축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월급을 축낼 수 있다면 행복이겠지. 그 전에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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