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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일걸즈 Nov 12. 2020

네팔 포카라에서 보내는 편지

Part 1. 레벨 1의 여행자

나의 벗, 나무에게


나무 안녕! 유랑이에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저는 낯선 곳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여행에 익숙해졌어요. 한국을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네요.

저는 지금 네팔의 트레킹 코스에 있는 아스땀이라는 마을이에요. 이 마을은 어찌나 고요하고 평화로운지 ‘샨띠’라는 힌디어가 정말 잘 어울려요.

어제까지는 산 밑도심 포카라에 있었는데 아침에 루가 저를 흔들어 깨우는 거예요. 옥상에서 히말라야가 보인다면서요.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부리나케 뛰어 올라갔는데 곧바로 입을 틀어막고 숨을 멈춘 거 있죠. 눈앞에 히말라야산맥이 있는데 누군들 안 그러겠어요! 그 빛깔이 어찌나 하얗던지, 제 평생 본 하얀색 중에 가장 흰 하얀색이었어요(적고 나니 말이 조금 바보 같네요. 그렇지만 나무는 이해할 거라 믿어요).

사실 십 분 전까지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소설을 읽다가-이 책은 모두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쓴 편지로만 이루어져 있거든요-펜을 안 들 수가 없어서 무작정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적어보아요.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이 여행에서 얻고 싶었던 게 하나 있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아오는 거였죠. 기적처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에서의 삶이 떠올라요. 얼른 나무에게 이들의 소식을 전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지만,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해요.

지난겨울에는 이모가 사촌 동생을 데리고 저희 집에 잠시 올라왔어요. 사촌 동생의 대학교 설명회 때문이었죠. 그가 서울에 있고 취업 전망도 좋은 학교에 입학해서인지 엄마는 이모의 얼굴이 편해 보인다고 말했어요. 저는 괜히 민망한 기분에 으응하며 말꼬리를 흐렸어요.


내년 계획은 어떻게 되니? 이모가 물었어요.

인도에 갈 거예요.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말했어요.

너 참 용기 있구나. 이모의 말에 저는 아하하, 멋쩍은 웃음을 지었어요.

너희 엄마 참 힘들겠다. 그건 알아야 해. 이모가 다시 말을 이었죠.

그럼요. 저는 다시 아하하, 멋쩍게 웃었어요.


이모는 제 이야기를 들으며 웃으면서도 찡그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어요. 제가 잘 알고 있는 표정인데 어쩌면 나무에게도 익숙할지 모르겠어요. 그 표정을 짓는 사람들은 제게 먼저 기특하다 말을 꺼내고는 이런저런 걱정들을 늘어놓았거든요.

그날 이야기는 제가 자러 들어간 뒤에도 새벽까지 이어졌어요. 아빠에게 제 삶이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 이모의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새해가 밝아도 대학 대신 여행을 떠나는 삶을 말하는 거였죠. 그런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녔나봐요. 그날 밤도 제 삶이 남들이 보기에는 온갖 불안으로 점철되어있는 건지 고민하며 잠들었거든요.

그때가 대학에 가지 않은 지 1년이 조금 넘었던 것 같아요. 대학생도 직장인도 아니고 번지르르한 계획 하나 없는 저에게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하냐고 자주 물었죠. 처음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갈팡질팡했어요. 나무도 그렇듯 우리는 하는 일이 너무 많잖아요! 그래서 어떤 때는 브라질 악기 연주가가 되거나 독서광이 되었어요. 그냥 쉬는 백수일 때도 있었고 친구들과 알 수 없는 프로젝트를 여는 스무 살이 되기도 했죠.


어떤 이들은 ‘도대체’ 왜 대학에 가지 않냐고 물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냐면서요. 누군가는 제가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며,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글쎄요. 대학에 가지 않은 이유를 묻는다면 그냥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어요. 저한테 대학은 그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었고,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거든요.

그래요, 선택. 제게 대학은 그저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언제라도 배우고 싶은 게 생긴다면 가기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요. 그때 저는 확실한 꿈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에 가지 않았던 거예요. 취직을 위한 발판,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대학은 필수니까, 다들 가는 곳이니까, 라는 말로 저를 설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휴. 그러기엔 그 어마무시한 등록금이 너무 아깝잖아요. 물론 대학의 목적이 그런 거라면 존재해서도 안 되는 거고요. 그래서 나무가 대학 입시 및 수능을 거부하는 ‘투명가방끈’ 활동을 하는 모습은 정말 멋있었어요.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 선언이라뇨.

8개월의 고된 아르바이트 끝에 인도행 편도 비행기 티켓을 끊었을 때 저는 오랫동안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데도 재수를 하는 친구, 주말까지 학원에 나가는 동생, 어딘가 삶에 순서가 정해져 있는 듯한 한국이 많이 답답했거든요. 반면 제가 얼핏 보았던 이 바깥세상은 아주 넓어 보였어요. 이제부터 들려줄 얘기는 바로 이 바깥의 이야기에요. 제가 살던 세상의 바깥, 한국의 바깥, 지금까지 보고 들은 이야기의 바깥 언저리요.


©성지윤


인도 자이푸르에선 이스라엘의 노아라는 친구를 만났어요.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3년의 군 복무가 필수래요. 그리고 전역을 하면 다들 여행을 떠난다죠. 노아 역시 1년 동안 인도를 여행 중이었는데 그가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뭐라고 답한 줄 알아요? 이 세상이 자신의 학교라는 거에요! 그 말에 제가 얼마나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루가 제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니까요.

덴마크에서 온 니콜은 사무직 일을 하다 요가 강사가 되려고 인도에 왔대요. 한국에서는 ‘갭이어’라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이곳에서는 이 한 단어로 모든 게 설명이 되곤 해요. 니콜은 ‘갭이어’가 덴마크에선 아주 흔한 일이라고 했어요. 모두에겐 쉼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죠. 먼 곳으로 떠나가서야 저의 선택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다니 가슴이 조금 벅차오르더라고요.

프랑스 친구 우지니는 대학에서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했어요. 어린이들을 좋아해서 지금도 카트만두 보육원에서 자원 활동 중이에요. 그런데 우지니는 인도에서 명상과 요가 수련을 하고 마사지를 배우면서 더 좋아하는 일을 찾았대요. 그래서 5월에 프랑스로 돌아가면 당분간 스파숍에서 일할 거라고 해요. 여행이 우지니에게 또 다른 꿈을 안겨준 거죠.


우리는 한국에서 무슨 일 하느냐는 질문을 질려 했잖아요. 설명할 거리가 너무 많으니까요. 저는 종종 한국 사회의 루틴을 벗어난 제게 쏟아지던 지나친 관심과 걱정에 바스러졌어요.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기도 하고요. 구태여 그럴 필요 없었는데도 말이에요.

돈을 버는 족족 비행기 티켓을 끊는 친구, 전공이 맞지 않아 학교를 자퇴하고 여행을 떠난 친구, 여행 중에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며 ‘디지털 노마드’로 생활비를 모으는 친구. 이곳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그 고향과 언어만큼 하는 일도 가지각색이에요. 여기서도 종종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을 받지만 제 삶을 낱낱이 밝힐 필요는 없어요. 쉬고 있다고 대답해도 무어라 하는 이 하나 없죠. 한 번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 모두 마땅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었던 적도 있어요. “Do nothing”이라는 말을 당당히 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얼마나 인상 깊던지, 그 자리에서 남몰래 감탄했었죠.


젠더와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또 배우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요. 각자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 용인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더 자세히 알고 싶고요. 이들 속에서 다시 한국을 생각하면 속이 답답하고 슬퍼져요. 자신의 부모님이 입시 코디네이터를 알아보았다는 얘기, 입시 생활이 너무 힘들어 매일 운다는 친구 얘기, 원하는 대학이 지방이라는 이유로 엄마가 입학 취소를 했다는 얘기까지.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책상이 모두 팔렸다는 뉴스를 봤을 땐 온몸에 소름이 쫙 돋더라니까요. 드라마 속의 치열함이 그저 드라마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게 어찌나 화가 나고 속상하던지요.

저는 선택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을 책임지는 것은 의무이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그 자체는 권리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바깥에서 보게 되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은 이 권리를 잃고 있는 것 같아요. 자고 싶을 때 잠을 자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사소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요.


나무. 저는 이곳에서 자유를 만나요. 제 삶을 매 순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자유요. 요즘 저는 다시 저를 들여다보고 있어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 지금 어떤 걸 가져가고 또 놓치고 있는지요. 이곳에서 전 그저 또 한 명의 여행자일 뿐이에요. 제 삶을 걱정하는 사람이나 비판하는 사람은 없어요. 칭찬하거나 부러워하는 사람도 없죠. 스무 살이라는 딱지와 ‘비대학청년’이라는 이름표는 당연히 없어요. 오롯이 저라는 사람만 존재할 뿐이에요. 이상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유랑으로요.

최근 나무가 써 준 편지를 다시 읽었어요. 유랑이라면 잘할 거예요, 라뇨 세상에. 나무의 담담하고도 단단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라니까요. 눈물이 찔끔 났던 걸 굳이 숨기지 않을게요.

나무가 저를 믿어주었던 것처럼 저도 나무를 믿어요. 서로를 믿고 믿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고도 소중해요. 누군가 했던 말처럼 우리 삶이 또래 청년의 속도보다 한 템포 느릴 수는 있어요. 불안한 요소가 가득한 인생을 살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어느 누가 완벽히 안정된 삶을 살겠어요. 이미 서로 알고 있듯 우린 잘 해내고 있잖아요. 앞으로도 잘할 거예요. (물론 잘하지 못해도 당연히 괜찮고요) 지금처럼 용기 내어 우리답게 살아가 보아요. 어쨌든 우리 각자만이 만들어갈 수 있는 삶이니까요.


저는 오늘도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삶의 튼튼한 틈새 만드는 법을 배워요. 여행이 끝나고 제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어요. 일단은 이 지구별을 계속해서 떠돌아 보려고요. 이곳 어딘가에 저 하나 머무를 곳은 있겠지요. 지금 저는 행복해요. 나무의 2019년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쉬어가는 거 잊지 말고요. 늘 응원해요.


2019년 4월 9일

다름이 틀림이 아닌 한국이 되길 바라며.

네팔에서, 유랑 .

©성지윤
글 옥의진(유랑), 사진 성지윤(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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