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일걸즈 Nov 16. 2020

인디안 디스튼스

Part 1. 레벨 1의 여행자

인도에 가겠다고 했을 때 말들이 참 많았다. 거긴 여자가 여행하기 힘든 곳이고, 복잡하고, 더럽고 어쩌고 저쩌고... 그중에서도 왜 하필 인도에 가냐는 질문은 빠지지 않았다. 입에선 심심한 대답만 흘러나왔다.

멋진 사람들은 다 인도에 가던데….


열한 살 성지윤이 만화책을 읽을 때, 엄마는 열여덟 청소년이 쓴 여행기 <길은 학교다>를 읽었다. 저자는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 이길보라였다. 편의상 그를 보라라고 부르겠다. 엄마는 보라의 책을 건네며 말했다. “지윤이도 커서 보라처럼 살아라.”

열한 살 성지윤은 글이 많은 책이라면 질색해서, 들춰보지도 않고 보라의 책을 서재 한 귀퉁이에 꽂았다. 그 후로 요상하게 다른 책을 꺼내려고 할 때마다 책등과 눈이 마주쳤다. '길은 학교다 길은 학교다….' 다섯 글자가 나한테 주문을 거는 것 같았다. 그래도 꺼내 읽진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이제 막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보라의 책을 서재에서 꺼냈다.


보라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뒤, 선언을 한다. 대학교에서나 할 수 있을 법한 휴학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보라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지만 그들은 쉽게 보라를 지지해주지 않았다. 부모님과의 갈등, 주변 사람들의 핀잔에 지쳐갈 무렵, 부모님은 우연히 보라가 만든 여행계획서를 보게 된다. 꼼꼼하게 세워진 계획서를 보고 여행을 향한 보라의 진심을 느꼈다고 한다. 보라는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의 여행 계획을 말하기도 하고, 프레젠테이션 하기도 했다. 보라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이들은 응원과 함께 후원금을 보탰다. 그 후원금이 모여 보라의 여행 자금이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없던 크라우드 펀딩을 보라는 직접 발로 뛰며 한 셈이다.

보라는 8개월 동안 인도를 시작으로 티베트, 베트남, 캄보디아 등 여러 아시아 국가를 여행했다. 여행하면서 쓴 글을 모아 펴낸 책이 <길은 학교다>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보라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에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긴 여행은 한 발짝 떨어져 한국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길은 곧 학교이고 자신은 길 위의 학자, '로드스쿨러'라고 스스로 명명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보라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란 걸 깨닫고 다큐멘터리 감독의 길을 걷는다.


자신의 삶을 튼튼히 엮어 가는 보라의 이야기를 읽자,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졌다. 보라가 살아가는 방식은 나에게 어디에도 없는 참고자료가 되었다. 책을 읽은 뒤부터 인도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주변에 의연하고 단단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인도를 다녀왔더랬다. 이쯤이면 “인도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도라는 곳은 마법 같은 힘이 있어서 사람을 이토록 멋지게 만드는 건가 싶었다.

©성지윤


인도는 짐작했던 것보다 훠얼씬 큰 땅이었다.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 여행자는 인도를 여행할 땐 ‘인디언 디스튼스(Indian distance)’를 생각해야 한댔다. 인도에서만 느껴지는 시간과 거리감이 있다는 뜻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해남 땅끝 마을 가는 거리를 인도 사람들은 옆 동네 가듯 말한다.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하루 동안 기차나 버스 안에서 보내야 했다. 밤 버스나 기차를 탈 때의 묘미는 달리는 차 창 너머로 해가 지고 뜨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거다. 오후 다섯 시가 지나면 하얗게 작열하던 태양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마른땅 위로 태양이 내려앉으면 하늘도, 모래 언덕도 사람들의 얼굴 모두 금빛으로 물든다. 인도에 반해버리는 순간이다. 이것이 심야버스의 단맛이라면 쓴맛도 있었다. 

8시간을 이동하는 버스를 타던 날, 나와 랑은 두 명이 겨우 발을 뻗을 수 있는 2층 자리에 누웠다. 그날 밤 도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우리는 튀겨지는 옥수수 알갱이처럼 누워있던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잠잠해질 만하면 버스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난간 쪽으로 몸이 데굴데굴 굴렀다. 우리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서로를 붙잡아야 했다. 어두컴컴한 버스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던 나의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이 나왔다. 진심이었다.

로망이 있었다. 시장에서 현지인처럼 장보기. 그곳에서 오래 산 사람처럼 익숙하고 부드럽게 여행하기. 하지만 그 로망은 숙소 문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산산조각이 났다. 한 걸음 뗄 때마다 수십 개의 시선이 나와 랑에게 꽂혔다. 뒤통수가 새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면 수많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사람의 눈동자뿐만 아니라 핸드폰 카메라의 눈동자까지도 우리를 쫓아다녔다. 언젠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 날에는 직원이 내게 오더니 네 친구의 피부는 왜 저렇게 희냐고 소근 대며 물었다. 그들의 시선과 관심에 지쳤던 우리는 그날, 호스텔로 향하던 릭샤 안에서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딱 하나의 초능력을 쓸 수 있다면 투명 인간이 되는 능력을 쓰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나는 잘 못 섞여 들어온 이물질 같았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스스로 그런 신세가 되길 자초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인도는 사람을 멋지게 만드는 마법 따위 부리지 않았다. 멋진 순간은커녕, 위태롭고 구질구질해지는 날을 우리 앞에 툭툭 던졌다.


인도에서 돌아온 나에게 그곳은 어땠냐 물으면 곧장 답하기가 어렵다. 좋았다고 말하자니 거리로 나가기 두려웠던 마음이, 힘들기만 했다고 하자니 눈부신 인도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여전히 나와 인도 사이에 거리가 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보일 듯 말 듯 한 곳에 인도가 있다.


©성지윤
글, 사진 성지윤(찌루)


작가의 이전글 네팔 포카라에서 보내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