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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일걸즈 Dec 27. 2020

우리는 삶의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Part 2. 외톨이 어드벤처

호주에서 건축을 공부한 A가 말하길, 호주의 대학교수는 학생마다 가지고 있는 성향, 재능, 태도를 유심히 관찰한다고 했다. 대학교지만 개인 과외를 받는 느낌이었단다. 암스테르담 필름아카데미에서 석사 과정 공부를 한 이길보라 감독(이하 보라)은 지도 교수와 종종 하이킹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트위터에서 끝없이 이어지던 ‘#교수 새끼’ 트윗을 떠올리면 교수와 도란도란 하이킹하러 간다는 보라의 말이 낯설기만 하다.


한국의 A예술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총장의 인사말을 읽은 적이 있다. ‘아시아 최고의 독립 예술디자인 대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학교였다. 인사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국가사회 발전에 필요한 창의적 핵심 인재 양성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래는 네덜란드 G학교의 철학이다.


“재능을 가진 청년들이 시각 예술, 디자인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학교의 목표입니다. (…) 개인이 자신의 역량과 창의성을 최적으로 개발하기를 원합니다.”


A대학의 소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국내 최고의 실습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대내외적으로 우수한 실기 중심의 교수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회 변화에 필요한 핵심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는 점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G학교의 소개 글을 이렇게 맺는다.


“교내 학생의 70%가 네덜란드 밖, 6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온 국제 학생입니다. 다양한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것이 학교의 강점이라 생각하며, 이는 학생과 강사에게 다양한 관점을 가지는 기회가 됩니다.”


A대학은 인력, 인재, 리더를 양성하겠다는 말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좋은 품질의 물건을 생산하겠노라 약속하는 공장주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언젠가 한국에서 ‘좋은 대학’의 기준은 졸업생의 취업률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국가의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인 학교와, 개인의 예술성을 자유롭게 펼치도록 지원하겠다는 학교. 작은 차이지만 A학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사회에 필요한 인물’이 되는 것이고, G학교는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두 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교육 목표에 있었다. A학교는 ‘인재 배출’이었고 G학교는 학생을 위해 배움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 자체가 그들의 목표였다.


한국 밖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느낀 건 여행에서 만난 이들 때문이었다. 브렉시트에 관해서 열띠게 말하는 영국 친구들과 있을 땐 내가 얼마나 지적으로 협소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고, 갭이어는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하던 덴마크 친구를 보며 쉬어감에 야박했던 나를 마주했다.  그들이 툭툭 내뱉는 말이나 사소한 행동이 나를 얽매고 있던 틀에 조금씩 금을 내었다. 이런 사람들과 공부를 하게 되면 어떨까. 여행에서 하던 말장난을 넘어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서로의 동료가 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그때부터 사진학과가 있는 유럽의 학교들을 찾아 나섰다.

©성지윤

독일의 동쪽 도시 라이프치히 Leipzig로 무작정 향했다. 학교의 이름은 ‘Hochschule für Grafik und Buchkunst Leipzig’. 독일어 발음으로는 ‘호크슐레 퓌 그래픽 운드 북쿤스트’라고 읽는다. 책 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 사진, 영상 등 시각디자인을 주로 공부하는 학교였다.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크지 않은 홀이 나왔고 양쪽으로 계단이 나 있었다. 여름 방학 기간이어서 그런지 건물 안이 휑했다. 벽 곳곳에 있는 그래피티와 낙서, 행사 포스터를 보며 어렴풋이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상상해볼 뿐이었다. 혼자서 건물 안을 헤매다가 우연히 한 학생을 만났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학교생활에 관해서 물었지만 심심한 대답만 돌아왔다. 다른 걸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 애초에 무턱대고 찾아 간 게 문제였을까. 무의미한 말을 조금 더 주고받고 학생과 헤어졌다. 라이프치히의 학교 탐방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아무런 정보도, 감흥도 얻지 못하고 끝났다. 가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막상 와도 알 수 있는 게 없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나온 뒤로 하루가 도미노 무너지듯 꼬였다. 오네의 선배가 알려준 예술인 마을에 갔을 땐 모든 작업실이 닫혀있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지도나 간판이 전부 독일어로 쓰여 있어서 헤매느라 온 힘을 다 빼버렸다. 무심코 들어간 건물에선 관계자만 들어올 수 있다며 내쫓기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금세 날이 우중충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한적한 라이프치히가 유령도시처럼 보였다.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기차를 반대로 타는 실수로 비바람을 맞으며 기차를 기다려야 했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최악의 하루였다.


외국 학교에 대한 나의 환상이 너무 컸던 걸까. 아니, 그전에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는지도 모른다.


스물 하나. 삶의 다음 스텝을 내가 결정해야 했다. 이제 막 운전대를 잡는 초보운전자의 마음과 비슷했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짜릿함과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부담,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핸드폰 사진첩에서 4년 전에 찍은 사진을 찾았다. 열일곱이었던 성지윤은 스스로 꽤 큰 사람이라 생각했던 거 같은데, 지금 그때의 사진을 보면 마냥 어리다. 사소한 장난에도 까르르 웃던 모습이 맑기만 하다.

화장실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맑기만 했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퀭한 얼굴만 남아있다.


공부, 돈, 독립, 두려움.


몇 년 전까지 고민하지 않았던, 할 필요가 없던 것이 생겼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더니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할지 고민해야 했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공부할지 정했더니 이번엔 돈이 문제였다. 머리는 온통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기 바빴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영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영은 가고 싶은 캐나다 대학교의 학비를 벌기 위해 카페, 식당, 공장 일을 하루에 해내고 있었다. 작은 화면 너머 영의 얼굴에서도 발랄했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돼 보였다. 가벼운 발랄함을 잃고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누군가는 그것이 삶에 나이테가 새겨지는 시간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우리가 여태 지나온 것과는 다른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 부디 그 시간이 우리를 너무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지윤


여행의 마지막 날, 뮌헨에서 쓴 편지를 덧붙입니다.  


저와 유랑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을 기준으로 내일 한국행 비행기를 탑니다.

223일, 7개월 하고 열흘. 저희가 한국을 떠나 여행한 기간인데요. 그동안 유랑은 인도 우다이푸르에서 스무 번째 생일을, 저는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한 해를 타지에서 살아낸 셈이지요.

여행을 하는 동안 나이를 인지하며 사는 것에 꽤 무뎌졌습니다. 한국에 돌아가 2019년의 남은 두 달을 더 지내면 2020년, 저는 스물두 살이 되어있을 텐데요. 누군가 제게 나이를 물으면, "스으물..두우..살이네요 제가"라고 주뼛대며 답할 것 같습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 아쉬운 건 나의 스물한 살, 여행이 끝나서가 아니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2019년 나의 무모함과 용기가 그리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국에 있는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날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여행할 때였는데요, 친구가 물었습니다.

"여행은 잘하고 있어?"

암스테르담의 높은 물가에 치이고 몸뚱이 하나 제대로 누울 집도 구하지 못해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던 제가 대답했습니다.

"마냥 버티고 있어…."

"찌루, 인생 고수 다 되었네."


여행은 일희일비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를 무너지게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이내 다시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서게 만드는 순간도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사는 것도 여행과 닮아서 일희일비하는 시간 속에서 꿋꿋이 버티며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하루 앞둔 이 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잠에 들 것입니다. 인도로 떠나는 전 날 밤 설레었던 마음과 비슷한데요.

한국에 돌아가, 방 침대에서 눈을 뜨면 이 모든 게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긴 여행에서 만난 사람, 피부로 느낀 사건, 감정을 꿈처럼 휘발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여행에서 쓴 글을 그러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보려고 합니다. 구독자분들께 책 소식을 전하는 날이 오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소식 전하겠습니다. 그날까지 모두 몸 튼튼 마음 튼튼히 지내시길 바라요. 저도 그럴게요.


2019.9.22.
늦은 밤 뮌헨에서 찌루/지윤 드림.


글 사진 성지윤(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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