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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일걸즈 Jan 03. 2021

너에 관하여, 실은 나에 관하여

에필로그: 너에 관하여, 실은 나에 관하여

랑의 집에 놀러 간 날이었다. 우리는 거실에 이불을 펴고 나란히 누워 잤는데 다음 날, 랑의 남동생은 이불속에 파묻혀있던 나를 보곤 제 누나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짧은 숏컷이었고 랑은 긴 곱슬머리였는데도 말이다. 랑과 내가 닮았다는 제보는 끝이 없었다. 랑을 처음 만난 입학식에서 엄마와 아빠마저 랑과 나를 헷갈려했다. 처음엔 이런 일들이 마냥 재밌고 신기했으나 마음 한구석에선 불안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예능을 보면 출연자들이 자기만의 캐릭터를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나. 캐릭터가 겹치면 안 된다며 투닥대는 장면을 본 것도 같은데. 랑의 등장은 성지윤 인생극에서 나의 분량이 적어지는 것과 비슷했다. 이런 나의 애타는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랑은 더욱더 나를 닮아갔다. 독특한 디자인의 구제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 오직 나뿐이었는데 이럴 수가, 어느 순간부터 랑도 구제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게 아닌가. 또 다른 일례로 ‘너네는 이거 모르지? 심보로 혼자서만 팔로우하던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계정의 게시물 아래쪽에 ‘옥의진 님 외 000명이 좋아합니다.’라는 문구가 불쑥 뜬 것이다. 이런, 이것마저 침범당한 것인가. 랑은 나의 영역에 물밀듯이 들어왔다. 나는 우주최강 유일무이 유니크함 그 자체인 사람이라고 자부해왔는데, 랑의 등장으로 그 자부심이 무색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는 법! 랑과 나는 작정하고 맞붙었다-는 전개는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랑에게 오랜 소망이었던 인도 여행에 함께 가자고 말했다. 그 순간엔 별생각 없었다. 인도를, 긴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을 생각했을 때 다만 랑이 떠올랐을 뿐이다.


랑과 여행을 하면서 텔레파시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거 아닐까- 하는 믿음이 생길 뻔했다. 하루는 어쩐지 피자를 먹고 싶어 랑에게 “오늘 저녁은 피자 먹을까?” 물은 적이 있었는데 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딱 1초 전에 자기도 그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속으로 ‘맥주도 같이 마시면 좋겠네’라고 덧붙이면 곧바로 랑이 “맥주도 마실까?”하고 물었다. 텔레파시는 서로에게 서운한 일이 생길 때도 어김없이 발동했다. 랑이 어느 지점에서 마음이 상했을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곧장 사과할 때도 있었지만 먼저 사과하기 싫은 날에는 일부러 모른 척 버티기도 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둘 중 한 명이 죽는다는, 도플갱어의 전설을 어릴 적엔 믿었다. 다행히 랑은 나의 도플갱어가 아니었나 보다. 우리 둘은 닮은 점이 많았지만 그만큼 다른 점도 많았다.

랑은 아침으로 뜨거운 블랙커피와 달달한 빵을 먹는 걸 좋아했다. 일어나자마자 쓴 커피와 밀가루 빵이라니. 아침에는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는 나는 보기만 해도 잠에서 덜 깬 위장이 체하는 기분이었다. 따로 여행한 1개월 반을 빼면 6개월 반 동안 이런 애랑 아침을 먹었다. 아침뿐인가, 점심 저녁 간식 야식 모두 같이 먹었으며 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났다. 다행히 우리 둘 중의 한 명이라도 자면서 이를 갈거나 코를 골거나, 이불을 돌돌 마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 없어 서로의 잠을 방해하진 않았다. 음식 취향도 사소한 입맛 차이 말고는 비슷해서 메뉴를 정하는 일에 시간을 쏟는 일도 없긴 했지만, 랑과 나 사이에 가장 다른 점은 타인과 관계 맺기에 있었다.  


랑에게 더듬이가 있다면 모두 사람을 향해 있을 것이다. 랑의 보이지 않는 더듬이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탐색하느라 바빴다. 대화하던 상대가 자리를 뜨면 랑은 어김없이 입을 열었다. “좋은 애인 거 같아.” 혹은 “별로인 거 같아.” 랑의 기준은 간단했다. 자신과 잘 맞을 것 같아서 좋은 사람과 안 맞을 것 같아서 별로인 사람. 랑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짧은 시간에 사람을 판단하는 랑이 조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랑의 더듬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에게 해가 될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일이었다. 랑에게 끼치는 ‘해’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있는데, 사소한 말투라도 랑을 피곤하게 한다면 랑은 그 사람과 자신 사이에 미련 없이 선을 그었다. 그 선이 남극의 크레바스처럼 무자비하게 깊다고 해서 우리는 ‘유랑의 크레바스’라고 부르곤 했다.

언젠가 랑의 더듬이를 믿지 않은 날이었다. 랑은 몇 번이고 나에게 ‘그 사람 별로다, 느낌이 좋지 않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때도 랑의 판단이 이르다고 생각했다. 결국 랑이 별로라고 했던 그 사람은 나에게 불쾌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랑의 더듬이를 믿기로 했다. 랑이 별로일 것 같다고 하는 사람은 나도 멀리했다. 사람에 관한 ‘촉’이 무딘, 특히 해가 될 사람을 금방 알아채지 못하는 나였기에 랑은 나에게 앞을 디뎌 볼 수 있는 지팡이 같은 존재였다.

사람을 향한 랑의 관심은 더듬이 얘기만으로는 모자라다.

인도를 여행할 때였다. 우연히 찾아간 호스텔은 그야말로 히피들의 소굴이었는데, 처음 오는 사람이고 오래 있던 사람이고 상관없이 친해지는 아니, 친해져야만 할 것 같은 곳이었다. 호스텔에 막 도착한 날 우리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국부터 러시아, 칠레,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에서 온 이들이었다. 순식간에 많은 얼굴과 이름, 언어가 쏟아져 왔다. 나는 마냥 웃기만 했다. 담배를 물고 바로 다음에 피울 담배를 말았다. 줄줄이 담배를 피우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랑을 보았는데 그 애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데 며칠이 걸렸지만 랑은 생김새와 이름을 단번에 외웠다.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의 이름을 중반부가 되어서야 외우는 사람이 나였다. 여행 내내 만나는 이들의 이름이 죄다 영화 속 인물의 것 같아서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때마다 랑을 붙잡고 “쟤 이름이 뭐였더라?” 물으면 랑은 곧장 그들의 이름을 읊었다.

랑이 며칠 동안 장염에 시달리고 있던 때였다. 그때 우리 둘은 각자 다른 곳에 있어서 인스타그램 속에서만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속 랑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허예져 있었고 원래부터 내려간 눈꼬리가 힘없이 축 쳐져 있었다. 혼자 끙끙 앓고 있을 랑이 걱정돼 핸드폰을 들자, 랑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기차에서 네덜란드랑 독일 애들을 만났는데 걔네랑 얘기하니까 장염이 싹 낫는 거 같았어!”

장염도 낫게 하는 사랑의 힘, 이 아닌 사람의 힘이라니. 어쩌면 랑에게 사랑과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은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랑은 모든 면에서 빨랐다. 나의 핸드폰보다 두 배 더 큰 신형 핸드폰으로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해결했다. 다른 도시로 넘어갈 때면 버스나 기차 티켓, 호스텔 예약을 순식간에 끝냈다. 돈 계산도, 검색도 빠르게 척척 해냈다. 살면서 나의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으나, LTE 같은 랑 옆에서 나는 3G 인간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여행 초반엔 그런 랑이 있어 든든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행을 함께 하기보다 랑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 같았다.

인도에서 유럽으로 넘어온 우리는 홀로서기를 해보자며 각자 원하는 곳으로 떠났다. 혼자가 되자 생존을 위해 온 힘을 끌어올려야 했다. 랑의 빈자리는 컸다. 랑이 늘 해오던 교통과 숙박 예약,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 모두 내 몫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그다지 어려운 일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에 짜릿했다.

그럼 애초에 혼자 여행할걸, 후회하진 않느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랑과 함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누구도 믿지 못하던 날들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던 사람이 랑이었다. 불안해하는 나를 가만히 안아 준 것도 랑이었다. 혼자였다면 아마 딱 절반만큼, 이 여행이 모자랐을 테다. 식당에서 여러 음식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고 버스나 기차에서 불안함에 잠을 설친 날이 많았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더 자주 머뭇거렸을 테다. 황홀한 순간을 함께 기억하는, 백업용 외장하드처럼 랑이 이 여행의 증인으로 곁에 남아 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랑은 나에게 친구이자 라이벌이면서 동시에 나를 성장시키는 인물이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구처럼 랑을 향한 질투심은 늘 어떤 힘으로 변한다. 랑과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솟아 나온다.

나는 앞으로도 랑의 똑 부러짐, 유능함, 현명함을 떠올리며 나를 비교할 것이다. 나는 이만큼 왔는데 쟤는 저만큼 앞서갔네, 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질투하면서 자랄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늘 그랬듯 같은 곳에서 만나, 서로의 자라남을 온 마음으로 축하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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