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만...
애벌레는 약합니다.
작은 몸집에 몸을 보호하는 딱딱한 껍질도 없고 달리기도 느리고 날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또 단백질은 풍부해서 먹잇감으로는 정말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신세죠.
그렇다고 애벌레가 가만히 앉아 순순히 먹이가 되는 건 아닙니다.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세우죠.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흉내내서 천적의 눈을 피하거나
조금 더 대담한 친구들은 몸통에 가짜 눈을 그려넣고
뱀 흉내를 내며 천적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애벌레는 몸에 털을 덮기도 합니다.
그다지 따뜻해 보이지도 않고 단단해 보이지도 않는 이 털은
애벌레의 생존에 무슨 도움을 주는 걸까요?
이 털의 용도를 밝혀내기 위한 실험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이 실험은 이렇게 설계되었습니다
플라스틱 케이스를 하나 준비하고, 여기에 애벌레 한 마리와
애벌레의 천적, 검정명주딱정벌레를 넣습니다.
참고로 이 딱정벌레는 유명한 애벌레 사냥꾼입니다.
catepillar hunter 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요.
사냥감이 될 애벌레는 총 여섯 종류입니다.
털이 없는 애벌레 3종, 털이 있는 애벌레가 2종,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털을 깎은 애벌레입니다.
연구팀은 딱정벌레의 공격 성공률을 기록했는데,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털이 없는 3 종의 애벌레는 모두 100% 성공,
털이 있는 두 종은 93.6%와 46.8% 성공,
털을 깎은 종은 95.7% 성공이었죠.
일단 털이 딱정벌레의 공격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털이 있어도 성공률이 두 배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요?
이 두 애벌레는 털의 길이가 서로 다릅니다.
하나는 2mm, 다른 하나는 4~6mm 정도죠.
생존률이 높은 건 털이 긴 쪽이었구요.
딱정벌레는 단단한 턱으로 애벌레를 물어서 사냥을 합니다.
딱정벌레의 턱의 길이는 평균 2mm 정도.
그러니까 턱의 길이보다 털이 짧으면 딱정벌레에게 물리는 거고,
턱의 길이보다 털이 길면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겁니다.
털 보호막을 입은 동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타란툴라, 거미입니다
타란툴라는 털로 개미의 공격을 막습니다.
체급 차이만 보면 개미가 잡아먹힐 것 같지만 상대는 보통 개미가 아닙니다.
‘군대 개미’라고 불리는 이 개미들은 집단 사냥의 공포 그 자체입니다.
이 개미들은 집도 짓지 않고 언제나 행군하고 또 행군합니다.
수백~수천만 마리의 개미가 끊임없이 행군하며
경로에 있는 생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죠.
그 위력은 어마어마합니다.
메뚜기, 말벌, 전갈, 게 등 개미보다 몸집 큰 동물도 꼼짝없이 먹잇감이 되어버리죠.
그런데 이 논문에선 한가지 흥미로운 관찰 기록이 소개됩니다.
군대 개미의 행렬에 타란툴라를 놓았더니 개미들이 타란툴라 위로 올라가 사냥을 시작했는데,
타란툴라의 털 때문에 개미가 턱으로 물지를 못하더랍니다.
몇 번의 시도에도 별 효과가 없자 이내 개미들은 흥미를 거두고
타란툴라를 그냥 지나쳤다고 합니다.
군대 개미의 행렬이 지나가고 난 뒤, 타란툴라도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갔고요.
그 때문인지, 군대 개미의 식성을 연구한 자료에서도 타란툴라 거미가 먹이로 발견된 사례는
수백 건 중 단 2건 뿐이었다고 하는군요.
별 쓸모 없어 보이는 털이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연구였습니다.
참고 논문 : An extensive review of mutualistic and similar ecological associations involving tarantulas (Araneae: Theraphosidae), with a new hypothesis on the evolution of their hirsuteness (Journal of Natural History, 2024)
참고 논문 : Caterpillar hair as a physical barrier against invertebrate predators (Behavioral Ecology, 2014)
참고 뉴스 : We now know why tarantulas are hairy to stop army ants eating them alive (Live Science,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