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테스트의 결과는...
흥미로운 뉴스를 하나 봤습니다.
25년 2월 소더비 경매에 300년 전에 만들어진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이 바이올린은 대략 1113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도대체 악기에서 얼마나 좋은 소리가 나길래 이렇게 비싼 건가요?
소더비에선 이 악기의 소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풍부하고, 복합적이며 깊은 소리’
‘음색은 달콤하면서도 고르고, 음표 하나하나에 풍부함을 더한다’
‘유니크함이 깔린 따뜻한 음색’
이걸 읽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조금 호들갑 같은데…’
‘오래되고 귀한 악기라 괜히 더 좋게 들리고 그러는 거 아닌가?’
아니 그것도 그런 게 기술력이 지금이 훨씬 좋을 텐데300년 전 옛날 악기가
더 소리가 좋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구분도 못 할 것 같은데…
그래서 자료를 조금 찾아봤는데 흥미로운 논문을 한편 찾았습니다.
‘신구 이탈리아 바이올린의 청취자 평가’
제목만 봐도 감이 오죠?
옛날 악기랑 현대 악기를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실험은 파리와 뉴욕에서 시행됐습니다.
연주자 9명이 실험에 참여했는데 블라인드 테스트를 위한 무대 설계가 재미있습니다.
무대는 천막으로 가려져서 관객은 연주자를 볼 수 없고, 소리만 들을 수 있습니다
9명의 연주자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신식 바이올린으로 똑같은 곡의 똑같은 부분을 번갈아 연주합니다.
이때 연주자가 어떤 악기를 먼저 연주할지는 매번 바뀌기 때문에 관객은 순서로 악기를 추측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연주자가 괜히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면 뭔가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들면서
연주를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연주자도 악기를 분간할 수 없도록 용접용 고글을 씌웠습니다.
용접할 때 망막이 상할 정도의 밝은 빛이 나오기 때문에 엄청나게 어두운 고글을 쓰는데
이걸 연주자들에게 씌운 겁니다. 악기의 형태만 겨우 보이도록 말이죠.
관객은 총 137명이 참여했는데 여기엔 바이올린 제작자와 바이올리니스트가
90명 정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악기 소리를 듣는 귀가 상당히 정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거죠.
그런 다음 설문을 통해 가장 좋은 악기 소리가 무엇인지, 악기 소리의 구분이 가능했는지 등을 물어보고
결과를 토대로 악기 선호도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의 청중들이 신식 바이올린의 소리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신식 악기 소리를 구분하기 어렵다고도 했고요.
자, 그럼 이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명성은 다 허구이고,
1130만 달러의 값어치는 모두 거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사실 이건 질문 자체가 틀렸습니다
애초에 연구의 목적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값어치를 밝혀내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진짜 눈 감고 들으면 모르는 거 아니야?’라는 호기심을 정밀한 실험으로 해소하는 것입니다.
실험 결과는 ‘구분할 수 없다’로 명확하게 결론이 났고, 이제 연구팀은 다음 질문을 던집니다.
“바이올린의 연식, 제조국과는 상관없이 연주의 품질을 좌우하는 물리적 지표는 무엇인가?”
저는 이 과정이 과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호기심이 연구로 이어지고 그 연구가 다른 호기심을 낳고
그 호기심이 후속 연구로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데이터가 축적되고 그게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거니까요.
참고 논문 : Listener evaluations of new and Old Italian violins (PNAS, 2017)
참고 뉴스 : Listener evaluations of new and Old Italian violins (Smithsonian Magazine, 2024)
참고 뉴스 : Ditch the Stradivarius? New violins sound better: study (phys.org,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