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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이날 Feb 05. 2022

책을 읽으면

책을 읽으면 좀 알 수 있을까. 뭐든 좀.

 "엄마는 또 책 읽고 있겠지!"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말했다. 나는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아이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가는 참이었다.

 아이는 뭔가가 못 마땅한 듯한 표정이었다. 지난겨울 방학 동안 내가 책을 읽는 오전 시간에 아이도 함께 책을 읽기를 강권했기 때문이다.


 나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나 다양한 TV 채널 및 첨단 디지털 게임이 이미 체화된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내 아이처럼 아침을 산뜻하게 게임 아이콘을 클릭하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여러모로 유익하다지 어딘가 모르게  촌스럽게 느껴진다.


 아이는 책을 읽는 나를 확인하고 "역시나......"하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는다. 아이가 지나가는 자리에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책 보다 더 재미있는 게 많은 데, 쯧쯧'의 의미가 담겨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흑백 TV를 봤던 나는 볼 게 없고, 전기 철물점을 하시던 부모님은 밤 9시나 되어서야 귀 가했기 때문에 심심풀이로 책을 읽었다. 아이에게 아침부터 늦은 밤 까지란 아무것도 보지 않기에는 너무 지루한 시간이다.


 나는 중학생이었던 때도 고등학생이었던 때도 대학생이었던 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책을 읽지 않는 아빠가 늘 안타깝게 여겨졌다.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안타까워하는 내 아이와는 반대로 말이다.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영특했던 아빠는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서 책 대신 술을 택했다. 나는 아빠가 술 대신 책을 택했더라면 아빠의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노후를 일용직처럼 일해서 일당으로 번  돈을 술과 담배를 사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아빠의 좋은 인성과 명석한 두뇌가 술과 담배에 가려진 건 순전히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책을 읽었더라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행복할까?

아무리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행복은 장담할 수가 없지만, 적어도 술과 담배가 '아빠'의 동의어처럼 붙는 일은 없었을 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한 한 군인은 전쟁 때 적군에게 잡힌 후, 작전을 같이 수행하던 중령의 피부 거죽이 벗기는 장면을 눈을 뜨고 봐야 하는 고문을 당한다. 그리고 그는 어느 우물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된다. 그는 우물에서 지고 뜨는 햇빛을 보며 모든 희망이  정신이 영혼이 말살되는 느낌을 갖는다. 그는 죽지 않았지만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산다. 전쟁과 우물에서 겪은 충격과 공포와 절망이 이미 우물에서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아빠를 생각하면 늘 우물 속의 군인이 떠오른다. 아빠가 책 대신 술과 담배를 택한 것은 이미 다리 하나에 많은 철심을 박고 절뚝거리는 다리를 갖게 된 때문이라고,

 이른 나이의 갖은 고생이 아빠를 우물 속의 군인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우물에서 이미 영혼이 죽은 군인에게 책에 희망이 있다고 거짓말할 수는 없지는 않은가.

 아빠에게는 술과 담배가 우물 속의 빛이고, 아빠의 슬픔이 꽹과리 소리로 그늘진 나에게 책은 조용한 도피처이다.

 

 사후 약 처방이 되지 않으려고 나는 전전긍긍 책 읽기에 매달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경험을 할 수 없으니 어떤 상황과 고통에 대한 역치를 책으로 끌어오리려는 방어 작용인 셈이다. 온몸의 피부 거죽이 벗겨지는 장면을 상상할 때, 바늘에 찔려 피가 찔끔 나거나 종이에 손이 베이거나 하는 일은 휴지로 꾹 한 번 누르고 말 게 된다. 어떤 두려움을 잊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직면'인데, 책이라는 아바타가 대신해주는 고마움이랄까. 나 대신 싸워주고 다쳐주는 '책'이다.

 아빠는 우물에 들어가기 전에 아빠를 대신해서 싸워줄 기사 한 명을 달고 들어갔어야 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아빠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기질로 조용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책을 읽은 덕분에 속은 매일 열 칼 든 장군이 춤을 추고 겉은 차분한 연기쟁이가 되어  표면적으로는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우물에 들어앉은 내 아빠를 우물 밖에서

"아빠! 심심하지 않아? 책 좀 줄까?"

우물에서 아빠를 꺼낼 생각을 도통하지 못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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