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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업 아니고, 픽 컵이래요.

다시 걷는 육아의 길

by 연글연글




큰딸이 어렸을 때,
어찌나 말도 많고 따지기도 잘했던지
동네슈퍼 아주머니가 나만 보면 늘 이렇게 말하셨다.

​" 아유, 애기가 말을 너무 잘해서 키우기 힘들죠!"

​매사에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이, 시시비비 따지고 요구사항도 많던 큰딸.
피곤이 극에 달할 즈음, 둘째가 태어났다.
그런데 세상에!
둘째는 어쩜 그리 순하고 과묵한지, 큰딸의 반만큼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따지기 대장 큰딸이 자기랑 똑 닮은 딸을 낳았는데
개량종이 정도가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이 손녀 역시 할미한테도 사사건건 따지고, 요구하고, 부리고, 한술 더 떠 영어 발음까지 지적을 한다.

​가끔씩 하원할 때,
유치원 버스를 타지 않고 자기 자전거를 타고 싶다며 하부지 할미한테 픽업 와 달라고 요구한다.
아침 등원 준비로 옷을 입히면서

"그래. 이따 시간 맞춰 자전거 가지고 픽업 갈게"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놈의 '픽업'을 '픽업'이라 했다고, 그런 말은 없다며 울고불고 난리다.
그럼 도대체 뭐냐 물으니
'픽컵' 이란다. (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손녀는 그 발음을 틀렸다고 생각한다. )

​아침부터 뭔 난리통.
손녀를 달래느라 결국 마주 보고 눈을 맞춘 후,
손녀 입을 보면서 세 번이나
"픽, 컵"
"픽, 컵"
"픽, 컵"을 따라 한 후에야 오케이를 받았다.

​하아... 나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되는 거니...

​겨우 진정된 6살에게 살랄라 원피스를 마저 입히고,
왕리본으로 머리를 마무리하면 등원 준비 완료다.
(6살은 살랄라 치마와 왕리본이 필수다.)

​손잡고 달려 나가 유치원 버스 태워 보내고 나니,
아침부터 혼이 나간 할미는 아이스커피 원샷 각이다.

​하지만 하원 시간이 되어,
자전거를 끌고 가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를 보고 달려 나오는 손녀.

환하게 웃으며 “할미, 사랑해!” 하고 안기면
그대로 다 리셋되는 할미다.

​아침의 난리도, 지치고 힘들던 육아도
몽땅 잊어버리고 또다시 달릴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어렵게도, 행복하게도, 여러 가지 맛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손녀와의 지나 간 일상을 기억하고 싶어서
격동의 6살 (지금 나이로는 5살) 어느 날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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