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나의 힘
한참 육아와 살림에 치이던 시절에
금요일 밤이면 방영되는 "드라마 게임"이라는
단막극이 있었다.
부부의 갈등을 다룬 짧은 드라마였는데 현실적인 내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불륜, 파탄, 숨겨진 비밀 등으로 결혼 생활이 무너지는 내용이 많았는데, 결말 예상도 뻔한 그런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금요일 밤이라는 시간대 때문인지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던 나도 자주 시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서 문제의 서방은 왜 그리도 '박서방'이 많은지,
등장하는 장모마다 "이보게, 박서방" 이 단골 멘트였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확률적으로도 문제의 서방은 박서방이 많은 가 보구나. 어쩐지 늘 2프로 부족하더니만, 박서방이라 그런가 보구나' 툴툴거리며 남편에게 따지기도 했었다.
그런 '드라마 게임' 속 박서방 이야기는,
어느 날 시누이와 동서와 나눈 수다자리에서도 다시 등장했다.
나는 슬쩍 박 씨 남편의 흉을 보며 웃자고 운을 띄었다.
시누이와 나는 깔깔 웃으며 재미져 가고 있는 그때,
동서가 하는 말이
"남자는 다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헉! 이거 cf에서 많이 듣던 소리였는데
그럼 문제는 남편이 아니고 나였단 말인가?
잠시 아리송하게 있는데, 동서가 이어 말했다.
"저는 결혼 전에 배우자 기도를 꾸준히 했어요.
신기하게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기도 내용과 거의 일치하더라고요"
아! 그거였구나!
난 그런 기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일찍 떠밀리듯 결혼하는 바람에 기도며, 이상형이며
그런 거 여유 있게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 딸들만큼은 꼭 성공해야지.
또 내 발등처럼 찍으면 안 되지 싶었기에
저녁 기도 제목에 '사위를 위한 기도'를 한 줄씩 넣었다.
딸들 마음고생 안 시키고
밥도 안 굶기고
서로 소통되는 상대를 보내 주시기를 기도했다.
사실 딸 가진 엄마 마음에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도 서운하기 마련이다.
장녀인 나를 시집보내던 엄마의 마음을 보았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딸이 결혼하고 싶다며 오빠를 데려왔다.
말간 얼굴에 반듯하게 생긴... 그러나 '박 씨'였다.
'허허 참, 또 드라마 게임이네' 속으로 생각하며
요리조리 뜯어보니, 문제의 박서방 기운은 도무지 느껴지지 않았다.
'아! 이 오빠는 그 외의 박 씨구나.' 맘을 놓았다.
그들은 내 사랑 손녀까지 낳아서 오손도손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십 년이 흘러,
이번엔 작은딸이 결혼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며 인사시켰다.
친구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웃음마저 귀여운... 그런데 또 '박 씨'였다.
'허참, 또. 또. 또. 드라마 게임이네' 이번에도
이쪽저쪽 샅샅이 뜯어봐도 문제의 박서방은 아닌 듯했다.
그리하여 그들도 올해 결혼했다.
참으로 깊고도 질긴, 박 씨와의 인연이다.
단지 드라마 속 안 좋은 이미지를 이유로
내가 색안경을 낀 그 박 씨들은, 성씨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던 것이다.
다 알면서도 괜히 남편한테 심술부리고 싶을 땐 "하여간 박 씨는 말이야..." 하면서 박 씨를 물고 늘어졌다.
에라, 못난 인성.
그리하여, 우리 집엔 본이 다른 세 박 씨들이 우글우글 모여있고, 유일한 유 씨가 잘난 척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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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버전)
88 여사 김여사 님은, 두 사위에 더해 두 손주 사위까지 모두 '박 씨'라는 한 수 위의 통계를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