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나의 힘
우리 집 식구들은 유난히 아기들을 좋아한다.
통통한 볼살을 주무르고 싶은 아기부터
서툰 말로 “안냐~옹” 하고 인사하는 유아들까지,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길거리에서나 한 번쯤 더 눈길이 간다.
나는 내 아이들을 키우기 전에는 몰랐었다.
그렇게 예쁜 시절이 지나고 나면
그토록 무서운 시절이 매복해 있다는 것을.
바로, ‘환장의 사춘기’
내 아이들이 그 시절을 지나고 있을 때,
나는 굳은 다짐을 했다.
앞으로 어떤 아이라도 사춘기라면 말도 섞지 않으리라.
그만큼 사춘기는 나를 호되게 때리고 있었다.
우리 집 유일한 E 성향의 큰딸은
비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에 다녔다.
입학 후부터 내내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다.
핸드폰도 주지 않는 ‘야자 타임’을 너무 힘들어해서,
꼭 시한폭탄이 집으로 굴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건드리기만 하면 "펑" 하고 터질까 봐, 나는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눈치 살피기에 급급했다.
집에만 오면 하는 얘기가
'선생님은 마녀이고 친구들은 도깨비'였다.
선생님은 숨통을 조이는 교칙과 규율만 강조하고,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도 책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단다.
“학교는 나를 삼켜버리려는 괴물 같아.”
마침내 눈물까지 보이며 흐느끼는 딸을
보다 못한 남편이 말했다.
“한 달만 버텨보자. 그래도 힘들면... 아빠랑 같이
괴물 학교에 불 지르고 다른 학교로 도망가자.”
위로랍시고 하는 소리가 저 모양이니, 참 기가 막혔다.
그런데 우리 딸은,
“아빠, 카리스마 있네?” 하더니
씨익 웃으며 쓰윽 눈물을 닦아내는 것이 아닌가.
오머나, 저 둘은 도토리 수준이 딱 맞는 부녀였던 건가?
그러더니 정말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딸은 자기랑 비슷한 무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고
쉬는 시간마다 말뚝박기, 김밥 말기, 매점 정복하기 등으로 학교생활에 살판(?)이 났다.
절대로 그 학교에는 적응 못할 것처럼 굴더니,
이제는 초등학생 동생에게 이런 조언까지 하더라.
“너도 나중에 학교 가보면 알게 될 거야.
고등학교가 제일 재밌다는 걸.”
이런 간신 나라 충신 같으니라고.
그렇게 집안을 뒤흔들어 놓더니, 불과 3주 만에 한다는 소리라니.
학교 적응은 그렇게 일단락됐지만,
사춘기는 이제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없었다.
내가 한마디를 하면, 딸아이는 고개를 말머리처럼 흔들며 ‘따다다 다’ 쏘아붙였고,
그 말들은 내 가슴에 슉슉슉 화살처럼 꽂혔다.
그래서 나는 노트를 준비했다.
밤마다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 딸의 머리맡에 두었고,
딸은 아침에 답을 적어두고 등교했다.
우리는 최대한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나니,
나는 사춘기가 정말 무섭고 사춘기 아이들도 무섭다.
그 시기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것과 마음을 무디게 갖는 것뿐
결국 모든 건, 시간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그런데 요즘, 앞집에 귀엽던 똘똘이가 어느 날부터 눈을 제대로 뜨지 않는다.
그것이 왔나 보다.
나도 괜히 무심한 척,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앞으로 그 눈이 다시 또렷해지는 날이 오면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온다)
그때 “안녕?” 하고 인사하면 되니까.
나라고, 딸의 힘들던 사춘기 시절에
'너랑 똑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이런 축복을 안 했겠나...
.
.
.
그런데 그 딸을 또... 내가 키우게 될 줄은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