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심포니 라비니아 음악축제
여름 음악회는 야외에서 즐기는 것이 최상이다. 풀밭 위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맥주와 과일 그리고 나쵸와 과카몰리를 먹고 마시며 들리는 멜로디를 따라 부르는 시간은 여유롭다. 앉아있는 것이 지루해질 때는 걸어 다녀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더 이상 편할 수 없이 생생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시카고 심포니는 여름엔 라비니아 공원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펼치는데 내가 방문했던 날의 프로그램은 가장 미국적인 작곡가들로 짜인 매력적인 레퍼투아였다. 지휘자 마린 알솝은 2018년부터 매 해 여름마다 라비니아 숲의 여름을 음악으로 채우고 있다. 흰색 재킷을 입고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아우르는 강한 카리스마가 뒷모습에서도 느껴졌다.
첫 곡인 코플란드의 '애팔래치안 스프링'은 1944년에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의 발레작품으로 공연되기도 했던 곡으로 귀에 익숙한 찬송가 멜로디로 편안히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 곡은 제임스 P. 존슨의 피아노곡을 Rimelis가 오케스트라곡으로 편곡을 한 것으로 연주했다. 도입부에서는 금관악기들이 찬란한 음색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금관악기는 재즈선율과 맛깔스럽게 어울린다.
인터미션 후에 새뮤얼 바버의 놀랍고 감동적인 곡이 펼쳐졌다. Knoxville: Summer of 1915, Op.24는 James Agee의 시에 바버가 소프라노 독창곡으로 만든 곡이었다. 아름답고도 심오한 시구가 아름다웠고 소프라노가 읊는 선율도 극한의 심미감을 느끼게 했다. 가사를 백 퍼센트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시의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연상하게 하는 스케일이었다. 감동적인 시간 속에 빠져들었다가 나왔다.
마지막 곡은 죠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였다. 연주자는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한 흑인 여류 피아니스트였다. 이렇게 사람을 한정시키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연주는 모든 선입견을 때려 부수는 과함의 도가니였다. 맨해튼 음대 교수이기도 한 피아니스트 미셸 칸은 드레스도 과했고 머리핀도 과했고 건반을 두드리는 어마어마한 파워도 과했다. 무엇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랩소디 인 블루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한 연주였다. 연주가 끝나자 모두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앙코르 곡은 제임스 P. 존슨의 곡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뜨거운 햇빛을 맞으며 들어갔던 라비니아 공원이었는데 나올 때는 분수와 계단을 비추는 조명으로 아름다웠다. 넓은 공터에 자리한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차 있었지만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빠져나갔다.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이 웃으며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온몸이 행복감으로 가득했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