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심포니와 안토니오 파파노-롯데 콘서트홀
런던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가 사이먼 래틀에서 안토니오 파파노로 바뀐 후 첫 내한공연이다. 다니엘 하딩과 함께 왔던 런던 심포니의 사운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다닐 트리포노프와 협연하는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던 안토니오 파파노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지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런던 심포니와의 이번 공연은 레퍼토리 선정부터 기대되었다. 생상의 3번 교향곡은 '오르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처럼 오르간의 연주가 들어가는 곡이다. 난 요즘 오르간의 발페달을 배우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공연을 보면서 동기부여도 하고 싶었다. 물론 유자 왕의 연주도 무척 기대되었다. 그녀는 볼 때마다 대단한 기교파의 정수를 보여주는 독보적인 연주자이다.
첫 곡인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은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를 원곡으로 한다. 오페라의 참패를 경험한 베를리오즈가 안타까워하면서 연주회용 서곡으로 만든 것이다. 이 십 대의 베를리오즈가 '로마 대상'을 받으면서 로마에 머무를 수 있었던 기간에 작곡한 것이라 이탈리아의 선율이 녹아들어 있다.
두 번째 곡은 유자 왕이 협연하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2번과 3번은 자주 공연되는 곡이지만 1번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유자 왕은 무슨 곡을 연주하든 쉽게 그러면서도 고도의 테크닉을 드러내며 마치 AI가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폭풍처럼 쏟아내는 연주 후에 터져 나오는 박수에 화답하며 세 곡의 앙코르를 했다.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폴카'그리고 시벨리우스의 '에튀드 2번'을 들으며 그녀는 오히려 느리고 작게 연주할 때 더 매력이 넘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 번째 곡은 카미유 생상의 3번 교향곡 '오르간'이다. 곡을 시작하기 전 인터미션 중에 단원들 몇 명이 무대에 앉아서 연습을 하고 있었고 관중들은 작은 소리로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난 무심코 고개를 돌려 오르간 쪽을 쳐다보았다. 검은색 연주복을 입은 날렵한 모습의 젊은 연주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르가니스트 리처드 가워스의 모습이 마치 영화'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무대에는 피아노도 한 대 있었는데 중년의 여성 연주자가 앉아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2악장이 되자 준비하고 있던 피아니스트 옆에 중년의 남자분이 자리를 잡더니 둘이서 함께 연주를 했다. 오르간은 작은 볼륨으로 공기처럼 소리를 냈다. 마침내 3악장이 되자 오르간은 처음부터 제 소리를 뿜어내면서 공간을 휘어잡았다. 피아노 부분이 끝나자 건반 아래쪽을 연주하던 중년 남성이 퍼커션 파트의 베이스 드럼 앞으로 가서 앉았다. LSO 단원들의 음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모든 곡을 가장 적절하게 연주했다.
꼭 실제 연주를 들어야 하는 곡에 라벨의 '볼레로'에 이어서 생상의 3번 교향곡인 '오르간'도 이제 포함된다. 음반으로만 들을 때는 오르간과 두 명의 연주자가 치는 피아노의 활약을 생생하게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실연을 보고 나니 생상이 오르간과 피아노를 뛰어나게 연주하는 훌륭한 연주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 만이 작곡할 수 있는 곡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