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한 달 동안 행복으로 가는 길,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잘 실천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무언가를 꾸준히 찾아 헤매면서 진정한 삶의 행복을 향해 가는 여정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다이모니아'라고 칭했다.
내가 첫 번째로 한 것은 암 전문의 김의신 박사님이 추천하신 '공감하는 유전자'를 읽은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을 그으며 외우듯이 읽었다. 저자인 요아힘 바우어는 신경과학자이자 내과 의사이고 또 정신과 의사이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정신과 신체의 밀접한 관계는 건강한 삶을 살지 그렇지 못할지를 정한다. 심근경색, 뇌졸중, 수많은 암질환, 치매는 점진적으로 우리를 염증에 노출시키는데 에우다이모니아적인 삶의 자세로 그 위험을 극복하며 살아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삶을 점검하며 몸과 마음을 다시 세웠다.
두 번째는 악기 연주이다. 오르간은 몇 년째 레슨을 받고 있는데 순교성지 성당에서 반주를 하게 되어 더 신경 써서 준비하고 있다. 쉬고 있던 해금을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것도 즐겁다. 김주남 선생님은 국립국악원 정악단원에서 은퇴하신 후에 일반인에게 해금을 가르치는 일에 열성이시다. 그분이 바로 에우다이모니아적인 삶을 사는 표본인 것 같다. 본인은 그런 현학적인 주제에는 관심도 없을 것 같지만 그분의 삶은 의미지향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삶이다. 악기도 잘 가르쳐주시지만 좋은 기운을 받아 오는 것이 더 크다.
세 번째는 특별한 연주회와 영화를 본 것이다.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오랜만에 내한해서 슈만, 리스트, 브람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을 불렀다. 그의 노래는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였지만 난 헬무트 도이치의 피아노 반주에 더 감동했다. 1945년생인 그는 세월의 흔적으로 등은 굽었지만 손가락은 아주 유연하게 선율을 풀어내었다. 노래보다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그의 마법에 빠져 들어갔다. 영롱하고 밝게 때로는 처연한 슬픔을 그리고 격정까지 표현해 내는 그의 연주에 모두 경의를 표했다. 뒤로 숨었지만 그는 빛났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전에 없이 대규모 편성으로 펼쳐진 정악단 정기공연은 감동의 축제였다. 임금의 행차에 연주되었던 행악과 보허자를 규모와 편성에 현대적인 시선으로 도전을 한 것이 성공적이었다. 편경, 편종등 여러 가지 타악기들이 총 출동한 귀한 공연이었다. 이렇게 위대한 우리의 음악은 소중하게 보존해서 계승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FLOW'를 보며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세계를 경험했다. 조각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인상적이었고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는 동물들을 바라보며 조금 씁쓸했다. 정신을 압도하는 음악도 인상적이었는데 알고 보니 라트비아 출신 감독이 애니메이터이면서 작곡가였다. 라트비아, 프랑스, 벨기에가 합작해서 걸작을 탄생시켰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심오해서 감독이 연륜이 있는 줄 알았는데 94년생이라는 걸 집에 돌아와서 확인하고는 감탄했다. 라트비아에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는데 라트비아 출신 예술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플로우에 가득한 물이 우리나라에도 알맞게 흘러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