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10문제보다 어려운 1문제

학습심리 공부법 교육심리

by 주윤

새 학기 첫날을 떠올려보세요. 새 학기는 안녕들의 세상이죠. 그것도 매우 부담스러운 안녕들 말이에요. 익숙한 교실에서 새로운 교실로 가는 걸음마다 세상의 모든 걱정이 모두 달라붙고 부담스러운 발걸음은 무게를 더해갑니다. 이 불편한 시작은 어쩌면 좋을까요.


매해 3월의 첫날처럼, 우리는 자주 포근한 익숙함의 세계를 뒤로하고 까슬까슬한 낯섦과 불편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불편하다고 이전 학년으로 돌아갈 수도, 나만 돌아갈 생각도 없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마음을 이겨내고 무거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나는 새 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니까요.


어려움은 매순간 불쑥 찾아왔어요. 처음 보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끙끙대야 했고, 뜀틀을 넘는 일도, 단소에 소리를 불어넣는 것도 참 어려웠어요. 팀 프로젝트를 하며 낯선 팀원과 의견을 나누고 합의된 의견을 끌어내는 것도 정말 어색하고 어려웠죠. 어려워서 마음이 배배 꼬이고, 뇌에서 찌릿찌릿 쥐가 날 것 같고, 다 그만두고 잠이나 자고 싶던 순간들(실제로 책을 펴면 잠이 오곤 했던 많은 날이 있었죠.)을 참 여러 번 견뎠어요.


어렵다는 건 그 분야에 대한 부족한 경험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 부족 또는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단, 좌절하기엔 이릅니다. 낯선 상황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는 건, 내가 배우고 있다는 신호거든요.


어려운 순간들을 견딘 덕분에, 작년에 참 어려웠던 그 수학 문제가 이젠 풀려요. 나만의 낯선 친구 사귀기 스킬이 생기기도 했고, 단소 소리가 나지 않아 곤혹스러워하는 동생의 입술에 단소 구멍을 대고 높낮이 각도를 달리하며 소리 나는 순간을 잡아주면서 ‘입술을 평편하게 펴봐.’하는 조언을 해줄 수도 있게 되었죠. 어려움을 견딘 대가로 내게 남은 건 앎, 능숙함, 그리고 한 계단 위에 올라선 사람에게만 보이는 더 많은 방법과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경로입니다. 내가 견딘 어려움의 시간이 내게 남긴 능력 주머니를 찬찬히 세어보니 보니, 적어도 내 삶에는 득입니다.


공부를 하는 건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는 일


우리는 각자 세상을 이해하는 폴더인 스키마(schema)를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배경지식입니다. 스키마를 통해 세상을 구분 짓고 이해할 수 있고, 상황에 적절한 행동으로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잎이 반달 모양이고, 가을에 노란색이 된다는 은행나무에 대한 스키마를 가진 사람은 잎 모양 손바닥 모양이고, 가을에 빨갛게 변하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를 구분할 수 있어요. 겨울철 대륙성 기후에 대한 스키마가 있는 사람은 겨울 유럽 여행을 준비할 때 차갑고 건조한 바람을 대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지 않았더라도 겨울 모자를 챙겨가며 기후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겨울 유럽의 풍미를 음미할 수 있겠죠. 곱셈에 대한 스키마를 가진 학생은 10개씩 24묶음이 있을 때 10개를 24번 더하지 않고 바로 10X24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죠.


다양하고 정교한 스키마를 갖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걸 의미해요. 마치 그래픽카드가 많을수록 컴퓨터의 해상도가 높아지듯, 스키마가 많을수록 세상을 좀 더 정교하게 구분 짓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더 다양하게 떠올리거나 나에게 유리한 방법을 떠올릴 수도 있죠. 이쯤 하면 유용한 스키마를 많이 갖는 건 내 삶을 잘 살 수 있는 자본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적은 스키마를 가지고 있는 삶은 어떨까요?


스키마가 세상을 이해하는 폴더라면, 그 폴더의 양과 질이 빈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이성적 근육이 부족하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24X10을 풀기 위해 24를 10번 더하고 24에 10을 곱하는 것이 처음엔 별 차이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곱셈에 대한 스키마는 누군가는 같은 문제를 풀고 남은 5분 동안 검토로 정교함을 높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마지막 답안을 제출하는 순간까지 허덕이며 긴장하다가 실수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듭니다. 무엇보다 시간은 누적됩니다. 지금은 5분 차이지만 그 5분의 시간들이 누적되면 어떨까요?


더욱이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문제는 모범 답안은 없으면서 상황은 매번 변합니다. 매일 등산을 하지만 매일의 날씨는 다릅니다. 매일이 맑고 화창한 날이라면 걱정할 게 없죠. 비 오는 날이라면 최대한 미끄럽지 않은 길을 알고 택하는 것, 해가 쨍한 날이라면 숲 터널이 있어 자외선을 피하며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알면 좋을 거예요. 다양한 경로를 안다는 것은 내 앞의 문제에 적절한 해결방법을 적용해서 덜 지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의 아름다움과 자신에 대한 효능감을 얻는 건 덤이겠죠.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생각의 자원인 스키마는 어떻게, 언제 만들어질까요?


스키마가 생기는 순간


인지 심리학자인 피아제(Jean William Fritz Piaget, 1896~1980)는 어렵고 불편함이 생각하는 힘, 즉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인 인지가 발달하는 순간임을 설명합니다.


고양이 스키마를 가진 어린이가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처음 보았습니다. 어린이는 처음 본 호랑이를 관찰하고 탐색하지만 호랑이 스키마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던 고양이 스키마에 호랑이를 구겨 넣어보며 ‘아, 큰 고양이인가 봐.’하고 호랑이를 이해해요. 이렇게 원래 가지고 있던 스키마에 따라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는 과정은 동화(assimilation)입니다.


어!? 그런데 계속 관찰하니 고양이랑 다른 점이 보여요. 몸집이 훨씬 크고 눈과 동공의 모양도 다른데, 게다가 어흥! 하고 큰 소리를 내지 뭐예요. 아이는 놀라고야 말았어요. ‘아! 이건 큰 고양이가 아닌가 봐. 그럼, 뭐지?’ 자신이 가진 스키마로 이해되지 않는 현상에 어려움을 겪는 이 과정은 인지적 불평형(disequilibrium)입니다.


친하던 친구와 다투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화해해서 다시 평온하던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 하죠. 어린이는 이 불편한 상태를 해결하고 싶죠.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각도 불편한 상태를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가진 스키마를 벗어나 새로운 스키마를 만드는 힘겨운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린이는 ‘저건 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이야.’ 하고 고양이와 호랑이를 구분 짓고, 호랑이라는 스키마를 새로 만들거나 ‘고양잇과 동물에는 호랑이도 있어.’하며 고양이 스키마를 좀 더 확장시켜요. 이 과정은 조절(accommodation)입니다.


내가 가진 기존의 스키마를 분해하고 새로운 스키마를 추가하는 어려움을 겪은 어린이는 ‘아, 그래 고양이뿐만 아니라 호랑이라는 것도 있어.’하며 평형화를 이룹니다. 그 대가로 이젠 호랑이를 보면 호랑이구나, 고양이를 보면 고양이구나! 하고 구분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호랑이를 만났을 때 고양이인줄 알고 쓰다듬을 일은 없겠죠.


적응의 자원, 스키마


겨울에 하얀 눈을 처음 본 아이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모습을 눈으로 처음 보죠. 눈이 내 손 위로 떨어져 닿자마자 없어지는 걸 보며 신기함을 경험해요. 나뭇가지 위에 솜털처럼 보드라워 보이는 눈을 만져본 아이는 갑자기 앙! 하고 울어요. 보송보송해 보였던 하얀 눈이 예상과는 다르게 차가운 거죠. 그때 아이는 하얀 눈이 차갑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이는 눈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탐색해서 눈은 하얗고, 하늘에서 내리고, 추운 겨울에 볼 수 있고, 차갑다는 새로운 지식 주머니를 만들게 되었죠. 탐색으로 지식 주머니가 많아지고 서로 연결되면 세상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잘 살아가는 스키마가 다 저만의 방법으로 있어요.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나만의 스키마, 새 학기에 새 친구와 친해지기 위한 나만의 스키마, 학원 숙제를 빨리 끝내는 나만의 스키마, 엄마가 갑자기 ‘서우야’ 대신 ‘임서우!’하고 성을 붙여 부르실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와 같이 경험으로 만들어낸 스키마를 가지고 살고 있죠. 이 스키마가 있어야 우리는 세상을 알아보고, 구분하면서 이해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잘 적응할 수 있죠. 알죠? 엄마께서 ‘임서우!’하고 부르시면, 평소보다 공손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거요. 눈치 챙겨야죠.


새로운 휴대폰을 사면 어때요? 익숙하지 않은 휴대폰을 이것저것 눌러보죠. 갤럭시 휴대폰을 쓰다가 아이폰으로 바꾸면 일단 기존의 갤럭시 스키마에 따라 휴대폰을 이것저것 눌러봅니다. 동화의 과정이죠. 몇 가지는 그런대로 가능했지만 몇 명 기능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눌러보고 탐색할 수밖에요. 갤럭시 때처럼 첫 화면을 좌우로 밀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밀었더니 화면이 나오면, ‘아~아이폰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야 하는구나.’ 하며 조절을 통해 평형화에 이르게 되고 새로운 아이폰 스키마를 만듭니다.


바람직한 어려움


심리학자 Bjork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을 할 때 더 잘 기억된다는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이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쉬운 문제를 해결할 때는 뇌가 덜 노력하기 때문에 뇌에 흔적을 덜 남기지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을 할 때는 원래 알고 있던 것을 끌어와서 해결할 수 있을지 궁리하고,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보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뇌는 우리의 노력을 다 알아주고 기억해 줍니다. 무엇보다 생각의 자산을 남깁니다.


인지발달을 연구한 Vygotsky 역시 ZPD(Zone of Proximal Development)를 제안하며 인지발달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보다 약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때 이루어진다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변하고 우리가 처한 상황도 매번 변해요. 낯선 상황에서 당황하고 불편을 느낄 때 방법은 두 가지예요. 그 상황이 다행히 기존에 가진 스키마로 이해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 둔 스키마 덕을 보는 건 보람된 일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스키마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No pain, No gain.” 우리가 낯설고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낯설고 어려운 순간은 바로 인지적 불평형을 경험하는 상태인 거죠. 내가 원래 가졌던 생각으로 새로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가진 생각의 틀에 새로운 정보를 구겨 넣으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변하고 매일의 날씨는 바뀝니다. 비가 오면 우산이든 우비든 입고 나서야죠. 괜찮아하고 늘 같은 방식으로 걸으면 걸을 수는 있겠지만 젖어오는 신발과 옷에 내게 남는 건 감기일지도 모릅니다. 처음엔 가볍게 지나가겠지만 누적된 감기는 결국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죠.


무엇보다 스키마가 적은 삶은 납작합니다. 다양한 종의 식물이 사는 울창한 숲은 풍파에 견디는 건강함과 유연함을 가지고 살아남습니다. 이는 소수의 종을 가진 숲이 가진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이죠. 울창한 삶을 갖는 일은 어렵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새로운 생각, 스키마를 만들며 사는 삶일겁니다.


당장은 변화가 두렵고 귀찮을 수 있습니다. 다만 참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는 그 불편을 겪으며 문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스키마를 가지게 됩니다. 새로운 스키마는 불편한 상황을 겪어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랍니다.


어려운 순간이 내가 발달하는 순간이다!

이제 어려운 문제 앞에서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볼 순간입니다. 어렵다고 투덜대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고 이 순간을 내 생각의 숲에 새로운 나무를 심는 시간으로 여겨보는 겁니다. 내 생각의 숲을 더 울창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푸르고 건강하게 자랍니다.


오늘 당장 새로운 스키마를 만들어보는 건 어때요? 새로운 친구에게 말을 걸어보는 나만의 기술, 늘 참치마요만 먹다가 오늘은 김치볶음밥 맛을 먹어보기. 평소에 문학작품을 주로 읽었다면 이번에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만나보거나, ‘부분과 전체’를 읽으며 하이젠베르크와 과학자들의 대화를 만나보는 건 어때요? 스키마가 풍부하고, 서로 잘 연결될수록 세상을 좀 더 선명하고 재미나게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