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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옥 Nov 22. 2021

올리브나무 사이로

학교에서 나와 만난 나의 아이들에게

 49. 기타 치는 한문 선생님     

 한문 선생님이 기타를 치신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부족한 내 귀로는 그 선생님의 솜씨가 탁월한지, 이제 막 배우는 과정의 실력인지도 잘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참 좋았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드신 후 교무실에서 20분 정도 연주를 하시는데 나는 그 시간이 행복하였다. 유명한 가곡도 연주하시고,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학교 앞 찻집에서 자주 들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곡도 연주하신다.      


 옛 제자들이 내게 “선생님 목소리 잊지 못해요.” 할 때도 있었으니 나는 교사로서 꽤 괜찮은 목소리였다고 생각한다. 수업 중 맨 앞자리에서 들어도 맨 뒷자리에서 들어도 별다르지 않고 맑고 명료하게 들렸다니 교사로서 괜찮은 목소리 아닌가. ‘라’음이라고 하던가. 소리의 끝이 흐지부지 사라지며 꼬리를 감추는 게 아니고 일직선으로 쭉 날아가는 음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목소리가 좋다고 학예회 끝인사를 맡아 했었다. 2학년이 되니 담임 선생님이 성악가가 되면 좋겠다고 하시며 방과 후에 남겨서 노래 지도를 해 주셨다. 그런데 한 달쯤 하시더니 포기하신다. 슬픈 일이다. 그 후로 나는 평생 음치로 산다. 그래서 늘 노래 잘하는 친구,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다.     

 우리 아버지는 하모니카 연주를 잘하셨다. 나도 하모니카를 사서 불어 보았지만 영 어렵기만 했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통기타가 유행하여 나도 대학교 1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받은 첫 월급으로 기타를 샀었다. 그것은 방구석에 심심하게 서 있었는데,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선생이 되고 나서는 음악 선생님에게 만돌린 연주를 배우는 클럽이 생기자 거기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 만돌린은 아직도 우리 집 어딘가 먼지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음악은 참 힘이 있다. 우리에게 기쁨도 주고 슬픔도 다독인다. 그 음악을 악기로 가볍게 다루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부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50. 명문 학교 나오신 도덕 선생님     

 옆 자리 선생님은 도덕 선생님이다. 남자분이시다. 최고 명문 학교를 나오셨다.

 그날 아침 표정이 조금 불편해 보여 물었다.

 - 무슨 일 있으세요? 좀 울적해 보이시네요.

 - 아침부터 딸아이 손바닥을 좀 때려주고 왔어요. 마음이 편치 않네요.

 - 왜요?

 - 김치를 안 먹겠다고 떼를 써서요.

 - 네? 김치 안 먹겠다는 게 왜요?

 - 한국 사람은 김치를 먹어야지요. 그래야 한국 사람이지요.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인천공항만 벗어나 보세요. 60억 인구가 평생 김치 한 쪽 안 먹어도 잘살고 있어요. 김치 안 먹는 게 뭔 대수예요. 다른 거 아무거나 잘 먹으면 되지요. 자라면 먹게 될 수도 있고요. 그게 매 맞을 일이예요? 선생님 이상하시다.     

 ‘그러세요. 마음 아프시겠네요.’ 하면 될 것을. 그런데 나로서는 그 순간 너무 이상했다. 더군다나 도덕 선생님인데 저렇게 편협한 생각을 가지시면 어쩌시나 하는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내가 주제넘은 간섭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부터 그 선생님이 껌을 씹으신다. 아마 금연을 하시느라 그랬는가 싶다. 그런데 종종 소리를 ‘딱딱’ 내며 씹으실 때가 있다. 쉬는 시간에 잠깐 그래도 참기 어려운데, 우연히 수업이 비는 시간이 같아서 함께 50여 분 있어야 할 때 저러시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정중히 그러시지 말라고 부탁을 드렸다. 부탁 이후에는 좀 조심하시는 것 같더니 습관이 되어 버린 건지 어느새 또 소리를 내신다. 또 부탁하기도 어려워 참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 아니, 선생님, 서울대학교에서는 껌 씹을 때 소리 내지 말라는 거 안 가르쳐요?      


 대학에서 뭐 그런 것까지 가르치겠는가. 그렇지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선생님은 그 후 다시는 소리를 내지 않으셨다. 껌 씹는 것을 중지하셨던가? 금연은 성공하셨던가? 기억이 불확실하다.                                              

 51. 학교에 도둑이 들다     

 제2 교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학교에 따라서는 교사들의 편의를 위하여 1층에 제1 교무실을 두고 층별로 작은 교무실을 두기도 한다. 우리 학교의 제2 교무실은 제1 교무실과 마찬가지로 1층에 있었는데 별관에 좀 더 가깝다. 10명의 선생님이 모인 소규모의 교무실이다 보니 조교 선생님도 따로 없다. 

 모든 선생님이 한꺼번에 수업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맨 마지막에 나가는 선생님이 문을 잠가야 한다. 값나가는 물건이야 많지 않지만, 출제 중인 시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생활기록부 등 중요한 서류가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서류는 물론 캐비닛에 들어 있고 잠금장치가 되어 있다. 그래도 출입문은 철저히 잠가야 한다.     


 그날 4교시였다. 모든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가시고, 국어과 선생님 한 분이 남아 학급 일을 처리하고 계셨다. 어느 신사분이 찾아와서 중앙일보 기자라 하며, 체육부장님을 뵈러 왔다고 하더란다.

 풍모도 점잖고 차림새도 단정하니, 그 선생님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차 한 잔을 대접하면서 기다리시라 하였다. 그런데 그 국어 선생님이 잠시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가 왔더니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4교시를 마치고 내려와 보니, 내 책상 맨 아래 서랍이 열려 있었다. 내 자리는 출입문에서 가장 멀고 벽을 등지고 앉는 자리였다. 누가 다녀갔나 싶어 서랍에 들어있던 가방을 열어보니 지갑이 없었다. 

 내 앞자리 선생님은 30만 원 정도가 가방에 들어있었고, 그 가방을 그냥 의자에 올려놓았는데도 털어가지 못하고 내 지갑을 집어갔다. 아마도 내 자리가 외진 곳이라 출입문을 열고 누가 갑자기 들어와도 태도를 숨기기 쉬워서 그랬나보다. 

 내 신용카드는 즉시 사용을 중지시켰다. 다행히 그날 내 지갑에 현금은 단돈 4천 원이 있었을 뿐이다. 선생님들은 ‘그 도둑 참 재수가 없는 날이네. 겨우 4천 원이라니’하는 얼굴들을 하신다. 도둑이 위로받는 진기한 풍경이다.  

   

 그래도 그런 일은 처음이라서 심장이 한참 두근거렸다.    

                                                         

 52. 가을 시화전     

 가을 시화전을 열었다. 모든 학생들이 시화를 만들어 체육대회 날, 화단 주변에 자기들 눈높이 정도에 만국기처럼 걸었다. A4용지 2배 크기로 만들어 코팅을 해서 걸었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청명한 공기를 마시며 여러 편의 시를 읽어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 될 듯했다. 축제 분위기를 내는 데도 한몫하였다.   

  

 이 시화 작품도 국어과 수행평가 성적에 반영하기로 하였다. 그 반영 비율은 선생님에 따라 달리 정했다. 국어과 성적 중에 20%가 수행평가 성적이고 항목은 선생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말하기, 논술, 설명문 쓰기, 독후감 등의 항목별 비율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반 평균 점수를 비슷하게 맞추면 된다. 

 어느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직접 시를 쓰게 하고, 직접 그림도 그리게 해서 내다 걸었다. 

 나는 과제물로 제시하였다. 직접 시를 써도 좋고, 쓰기 어렵다면 유명한 시를 선택하되 교과서에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이 조건이다. 그림도 직접 그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된다. 대신에 반드시 누구 시인지, 누구 그림인지는 밝히도록 하였다. 점수의 비중도 낮추고, 기한 안에 낸 사람과 기한을 어긴 사람, 안 낸 사람으로 구분할 뿐이었다. 

 나는 ‘시 쓰기’보다는 ‘말하기’나 ‘산문 쓰기’ 교육에 치중하였다. 시는 타고난 재능이 더 많이 필요하고, 산문은 노력으로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다는 나름의 견해를 가졌었다. 그리고 산문이 살아가는데 좀 더 실질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기타 치시는 한문 선생님께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고 말씀하신다. 어느 학생이, 나의 학생들이 내건 시화를 보고 몹시 분개하여 글을 올렸다고 한다. ‘남의 작품으로 시화를 하다니 사기 아니냐고, 이게 교육이냐고’ 화가 많이 나서 글을 올린 것 같으니, 내가 답변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신다.

 홈페이지를 열었다. 감정이 격앙된 학생의 글이 보인다. 댓글로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너희들이 직접 쓰고 직접 그려 시화를 준비하는 것은 보람도 있고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미숙한 글보다 여러 편의 좋은 시를 읽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등등’ 우리 반 시화는 점수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과 그 점수의 공정성에 관해서도 부연 설명하였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직접 나를 찾아오라고 하였다.

 그 학생이 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그 시화전에 부여한 의미를 이해했으리라고 믿는다. 사람 사이 소통에는 때로 긴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사람 사이 수많은 오해가 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잠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53. 넛지 (Nudge)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 찌르기’로 정의된다. 현명한 선택을 이끄는 힘이라고도 한다. 조삼모사에 넘어가는 사람의 심리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인간은 합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넛지는 좋은 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쓰일 염려도 있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공동으로 집필한 『넛지』라는 책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생활의 모든 순간에서 우리는 현재도 넛지를 당하고 있으며 넛지를 가할 수 있다.’   

  

 마트에서 물건 배열을 달리하기만 해도 잘 팔리는 물건이 달라질 수 있다. 모든 마케팅에 이것이 적용된다. 신간 서적도 마찬가지다. 펼쳐놓는 매대에 놓여 있어야 좀 더 팔린다. 책꽂이에 꽂혀 있으면 팔리기 어렵다. 서점의 매대는 출판사나 개인이 돈을 주고 사는 것이라 한다.

 상점의 물건 가격이 항상 29,000원 등 900이나 9000 단위로 끝나는 것도 일종의 심리를 이용하는 넛지다.

 음식점에서도 많이 팔고자 하는 것은 두 번째 가격으로 올려두어야 한다. 가장 비싼 것은 좀 꺼려지고 싼 것도 좀 그렇고, 두 번째 가격으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전에 우리 교감 선생님이 기준을 정해준 덕에 학교 자체평가 점수가 높아진 것도 일종의 넛지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화장실 사용을 깨끗이 하라고 아무리 주의를 줘도 안 되다가 남자 소변기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었더니 깨끗이 사용하게 되더란다. 이것도 넛지다.     


 알고 보니 나도 이 방법을 종종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줄 때 마음속으로는 ‘3번 써 오게 하자’ 정해 놓고 ‘여러분, 숙제로 이 부분 다섯 번 써 오세요’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아우성이다. 나는 잠시 기다린다. 그러다가 ‘그럼 세 번으로 할까요?’ 하면 아이들이 숙제가 줄었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나도 아이들도 모두 환하게 웃을 수 있다.

 결재를 받으려고 선생님들에게 매달 수업지도안을 걷을 때도 넛지를 이용한다. 마감일이 다가오는데도 안 내신 선생님이 10여 명이나 될 때, 내부 통신으로 빨리 내주십사 재촉하는 글을 10여 명 선생님께 한꺼번에 보내면 안 된다. ‘나 말고도 안 낸 사람이 많네.’ 하고 안심하면서 마감을 지키지 않는 분이 생긴다. 

 두 명 혹은 세 명 정도로 분할하여 보내야 한다. 그러면 ‘안 낸 사람이 두 명뿐인가? 내가 꼴찌로 내는 것은 곤란하다.’ 싶은 마음에 다들 부지런히 작성하여 마감일을 지키신다. 가끔은 내게 ‘늦어져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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