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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Dec 07. 2021

살다보니 되는 일도 있네

그가 웃는다. 

덩달아 나도 웃었다.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듣고 보니 정말 좋은 일이다. 우리는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그는 울지 않기 위해 최대한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말하려고 애쓴다. 

그렇지 않으면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숱한 사연들을 타고난 성격상 감당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훈련이 덜 됐는지 그 좋은 일을 이야기하는 입술이 여전히 울먹였다. 


어떤 팔순 어르신이 계신다. 

그는 어르신을 마음 천재라고 부른다. 갈 때마다 그의 손을 잡고 복을 빌어주신다. 대상자들은 열이면 열 모두 뭔가 더 달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어르신은 단 한 번도 그러신 적이 없다. 오히려 뭐라도 그에게 주시려고 애쓰신다. 

     

마음천재 어르신의 아들은 심장박동기를 달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넘어진 아들은 기계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은 구순이 넘은 치매 환자다. 마음 천재 어르신은 10년 넘게 매달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얼마 전에 양쪽 무릎을 모두 수술하셨다. 잘려나간 관절과 새로 들어온 인공관절이 잘 연결돼 힘을 받기 전까진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르신에게는 집이 한 채 있다. 

그 잘난 집은 이렇듯 생계가 막막하지만 나라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남편 대소변을 책임져주던 기저귀도 지원기관의 예산문제로 끊겼다. 연말이면 벌어지는 일이다. 그는 되건 안되건 구청을 찾아갔다. 복지 담당 공무원은 젊은 청년이었다. 어르신 사정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젊은 사람이 잘 알아들었을까 못내 의심스러웠다. 예상대로 공무원은 규정을 말했다.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그도 알고 있다고 했다. 

    

바람이 매서운 어느 날, 어르신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구청에서 기저귀와 쌀을 보내왔단다. 한동안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단다. 그는 뛸 듯 기뻤다. 세상에서 제일 무미건조한 생각을 떠올려 봐도 아무 소용없었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담당 공무원이 어르신 댁으로 직접 찾아왔단다. 젊은 사람이 참 친절하다고, 게다가 잘 생겼다고도 하셨다. 이제 기저귀 걱정을 덜었다고 하시면서 그에게도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셨다.

     

마음 천재 어르신에게는 젊은 시절 꿈이 있었다. 

시골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남편이 치매로, 아들이 심장병으로 누웠으니 그가 보기엔 어르신은 꿈을 실현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르신 생각은 달랐다.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상추, 고추 등을 심고 있으니 꿈을 이룬 것 아니냐며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게다가 남편과 아들이 살아있어 얼마나 다행이냐고. 두 사람이 없었더라면 내 삶이 얼마나 불쌍했겠냐고. 아직까지 내가 가족들에게 쓸모 있어 감사하다고.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그는 어르신을 뵐 때마다 삶을 배운다고 했다. 

행복이란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을 때 비로소 가능한 건 아닐까 생각했단다. 아직까지 가족들에게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을 꼭 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당신이, 우리 아들 딸이, 이렇게 살아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살다 보니 되는 일도 있다고 기뻐하는 그는 잘생긴 공무원이 많아지길 바랐다. 

자기가 구청에서 나온 후, 젊은 공무원은 관련 규정을 샅샅이 찾아봤으리라. 그런 사람이 잘생긴 것이 아니면 누가 잘생긴 사람이겠는가. 나처럼 못생긴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잘난 사람이 복지 공무원을 하고 있다니 나라에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다.   

   

가족이 살아있으니 참 좋은 일이다. 

나라에 훌륭한 공무원이 있으니 참 좋은 일이다. 

내가 가족들에게 아직 이런 저런 것을 해 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은 좋은 마음이 만든다. 

늦은 나이지만, 이제라도 마음 천재가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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