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ife barista
Dec 14. 2021
뭐가 괜찮아요?
할머니 몸에 멍 자국이 천지인데. 채 아물지도 못한 멍 위에 새로운 멍이 내려앉아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는 자꾸, 자주, 너무 많이 침대에서 떨어지신다. 낙상방지용 침대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어르신, 할머니 자꾸 떨어지면 돌아가실지도 몰라요. 떨어지지 않는 침대가 있어요. 정부 보조금이 나와서 싸요. 하나 사야 해요.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달라는 철부지처럼 할아버지께 조른다.
“괜찮아, 원래 그래.”
할아버지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얼마 전 할아버지는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싶다면서 자기 방에 말끔한 냉장고를 들여놓았다. 할아버지는 음료수를 절대 남에게 권하는 법이 없다. 오늘도 할머니 상처를 살펴보는 그의 바싹 마른 입술을 코앞에 두고, 혼자 홀짝홀짝 음료수를 드신다. 그는 마치 악마가 생명수를 마시는 것 같아 못마땅하고 억울하다.
그는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어르신, 그러면 하다못해 바닥에 충격 흡수용 고무매트라도 깔아요. 그건 정말 싸요. 할머니 조금이라도 덜 아프시게요.
“괜찮아, 원래 그래.”
두 사람은 50년 부부였고, 지금도 같이 산다. 할머니는 심한 치매를 앓은 지 오래고, 할아버지는 이제 치매가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뭐가 괜찮고, 뭐가 원래부터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인생이란 괜찮고,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건가. 치매는 모두 다 가져간다. 50년 부부 관계도, 삶의 의미도. 치매는 결코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환자들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도울 방법도 뾰족이 없다.
지금으로선 보호자 노릇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를 제쳐 놓고 낙상방지 침대를 사는 등 일을 벌일 수도 없다. 하긴 아무도 없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할머니께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뿐이다. 땅이 꺼져라, 한숨만 깊어간다.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차마 죽어 버리는 것이 낫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놈의 치매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오늘 그는 금방이라도 치매에 걸릴듯한 사람처럼 불안하게 흔들린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면서, 너무 앞서 치매를 걱정하는 건 아닐까.
하긴 이런 말도 들었다.
앞으로 많이 살아봐야 1년 정도라는 시한부 환자가 있었다. 그의 둘도 없는 친구는 고작 그거 살자고 그 고생했냐며 천둥처럼 울었단다. 그런데 그 친구,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먼저 죽었단다. 그래, 하루도 더 못살 사람이 1년 살 사람 위해 우는 것이 인생일도 모른다. 그러니 어쩌면 할아버지 이야기처럼 다 괜찮을지도 모른다. 미리 나불대지도 말고, 너무 까불지도 말고 가던 길 묵묵히 좀더 가보자고 그는 고만고만한 걱정들을 쓸어낸다.
그러다 문득 가족이 떠올랐다.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 문득 그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비도 오는데 오징어 썰어 넣고 막내가 좋아하는 김치전을 해야겠다.
그는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을 시장쪽으로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