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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Mar 31. 2022

이상하다, 딱 그 부분만 없네

마침내 딸은 머리를 깎았다. 승복을 입은 딸을 보고 엄마는 울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니?’라는 말은 입안에서 유산되었다. 엄마의 꽉 쥔 주먹보다 큰 눈물을 보고 딸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단지 그 이유 하나였다. 먹고 살려고 그녀는 점 보는 중이 되었다.


    

딸은 동네에서 가장 용했다. 어릴 때부터 눈치가 빨랐다. 말은 또 얼마나 청산유수인지. 거짓말인 줄 알고 들어도 다들 깜빡 속았다. 이런 천부적인 재능에 이제 후덕해진 얼굴과 상담 관록까지 더해져 점 보러 오는 손님들은 그야말로 그녀에게 간과 쓸개를 모두 내줄 지경이었다. 돈 된다는 천도제는 딸이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이제 엄마는 중증 치매 어르신이 되었다.  요양보호사가 없으면 식사도 용변도 혼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딸은 점 손님 때문에 언제나 바빴고, 엄마가 계신 옥탑방엔 거의 올라오지 못했다.  엄마의 요양보호사는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며 그에게 고주알 미주알 일렀다. 주말만 지나면 어르신 몸에 멍이 한가득 생기는 것이다.



“오늘은 멍 주변을 자세히 보니까, 뾰족한 걸로 찌른 것 같은 작고 깊은 상처가 있는 거예요. 한두 개가 아니에요. 이곳 저곳 많더라구요. 그 정도 상처면 엄청 아팠을 텐데. 누가 그랬냐고 물어봐도 어르신은 말씀도 없고, 눈만 껌뻑껌뻑하시는데, 미치겠네요. 누가 그랬을까요?”     



아, 맞다! 신당엔 CCTV가 있다. 도둑이 드나드는 것 같다며 딸이 설치했고, 스님은 그걸 그에게 자랑했었다. 여러 대의 기계눈이 신당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모니터를 그도 본 것이다. CCTV를 기억해낸 그는 당장 신당을 찾아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CCTV 녹화 테잎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딸뿐이었다. 그는 스님에게 자총지종을 상세히 말씀드렸다. 딸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깐 얼굴이 굳어지긴 했지만, 금세 온화하고 후덕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명랑한 목소리로, 자신이 확인해 보겠노라고, 걱정말고 돌아가시라고 했다. 그는 안심하고 돌아왔다.     



한 달이 다 되도록 스님으로부터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는 어르신 댁 정기방문날이 돼서야 다시 암자를 찾았다. 스님은 CCTV에 대해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요양보호사가 괘씸하다는 듯 그에게 어르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쏘아 부쳤다.     



“여기 좀 보라구요,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에요?”     



상처는 많았고 깊었다. 오래된 멍 위에 새 멍이 올라타 있었다. 그는 이제 막 생각난 것처럼 스님께 물었다. 스님의 답변은 이랬다.     



“이상하다, 딱 그 부분만 없네. 요양보호사가 돌아간 뒤 주말에 찍힌 CCTV 테잎만 잘 보이지 않더라고.”     



스님은 다시 후덕한 미소를 지었다. 암자에는 엄마와 딸, 단둘이 산다. 그는 CCTV를 보지 못했지만 본 것과 다름없었다. 더는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어르신의 상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르신, 아프지 않으세요? 그는 속으로 묻고 또 물었다. 찌른 사람을 잊었는지, 찔린 고통을 잊었는지, 묘비 같은 표정이 어르신 얼굴을 가렸다. 어르신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석이 되어 있었다.     



치매가 순수한 인간성의 어떤 면을 보여줄 것이란 그의 생각은 계속 빗나가고 있었다. 인간성이란 말은 이제 그에게 희망이 아니라 절망처럼 느껴졌다. 치매는 지금 그의 마음에 절망만을 가득 채우는 중이다. 절망이 모두 빠져나가 쪼그라든 마음엔 무엇이 남을까. 절망의 빈자리, 그게 희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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