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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Mar 16. 2022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부인과 아들의 표정은 사나웠다. 그의 시선은 사나운 표정을 피해 은신처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방에는 그의 시선이 머물 곳이 없었다. 한겨울 찬바람이 그대로 쏟아지는 허허벌판 같았다. 그 흔한 이불 한 장 없었다. 보일러 전원등은 죽은 사람의 눈처럼 퀭했고 방바닥은 얼음장이란 말조차 부족했다. 어르신은 똥오줌 냄새가 진동하는 낡은 내복만 입고 있었다. 아니, 내복이 어르신 몸에 걸려 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해 보였다.     


대상자의 치매 정도나 식사, 빨래, 대소변 등 특이사항은 보통 가족들이 먼저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는 오늘 대상자 어르신을 처음 보니까 아는 것은 없고 궁금한 것은 많지 않겠는가. 그러나 부인과 아들은 일절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어르신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 건 요양보호사였다.    

 

“어르신께서 추우실 것 같은데 이불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보일러도 사람 불러 손 좀 봐야 할 것 같고요.”

“괜찮아요.”

부인은 딱 잘라 말했다. 그러곤 덧붙였다.      

“똥오줌을 못 가려요. 괜찮겠어요?”

요양보호사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요. 괜찮아요.”


요양보호사는 한참을 망설이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벗겨져 있던 내복을 보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복은 하나 사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에 부인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이내 부인은 오줌에 찌든 내복으로 어르신의 따귀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그와 요양보호사가 할 수 있는 건 깜짝 놀라는 것뿐이었다. 아들은 마치 창밖 풍경을 보듯 미동도 없이 그 장면을 읽고 있었다.     


부인은 차디찬 칼처럼 말했다.

“많이 먹이지 마세요. 똥오줌만 늘어나요.”     


첫 만남은 이렇게 끝났다. 며칠 후, 요양보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한 끼 챙겨드리고 오면, 그 뒤 어르신께서 드시는 게 카스타드 한 개가 전부예요. 어르신은 밥이나 반찬을 해 둬도 챙겨 드실 수가 없고요. 가족들에게 말했더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네요.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는 내복으로 어르신의 따귀를 갈기던 부인이 생각났다. 관계가 그 정도라면, 음식을 챙겨줄 리 만무했다. 어쩌다 그들은 저렇게 되었을까. 어르신은 젊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고개를 빠르게 흔들어 현실감각을 깨웠다. 하루라도 빨리 요양병원으로 가는 게 낫다고 그는 재차 확신했다. 부인과 아들도 그걸 원했지만 아직 절차가 남아있었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요양병원으로 가는데 필요한 서류 몇 가지를 다시 설명해 주었다. 보호자가 준비해야 할 증명서 몇 장과 양식 하단에 보호자 이름을 쓰고 서명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아들은 뭔 절차가 이렇게 까다롭냐면서 폭력적으로 짜증을 냈다. 죽기 바라는 아버지가 제때 죽지 않아 생긴 세상 귀찮은 일이 목을 조르는 듯 꽥꽥댔다.     


그가 어르신 댁을 방문해야 하는 날이다. 잔뜩 구름이 껴 당장이라도 비가 퍼부을 것 같았다. 어르신은 요양보호사 덕분에 깨끗한 내복을 입고 있었고, 어디서 났는지 이불도 깔려 있었다. 요양보호사가 이리저리 마음 쓴 덕분이리라.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에게 말했다.     


사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어제는 어르신께서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럼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했더니, 세상에 이러시는 거예요.     


“지금 내가 살았어요, 죽었어요?”     


그는 왈콱 솟아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 그 역시 어르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당신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쩌면 이 세상엔 없을 지도 모른다.   

세상이 무덤 속에 있는 것처럼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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