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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Dec 30. 2021

치매가 쏘아올린 본능

질투 그리고 살인

그는 물었다. 왜 그렇게 치매에 집착해? 작가는 왼쪽 어깨 위에 떠 있는 천장을 잠깐 올려다본다. 답이 궁한 것이다. 할 말이 막연해서 천장에 쓰여 있는 뭔가라도 읽으려는 듯 시선이 깊다.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서.....”     


정말 인간이 하얀 종이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태어난다면, 그래서 지금 내 머리 속에 돌아다니는 기억들이 기존 인간들이 강제로 써놓은 낙서라면, 그래서 이런 낙서들이 진정한 나를 알아보고, 챙기고, 돌보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라면, 그래서 치매는 너무나도 깨끗하게 그 장애물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든든한 청소부라면, 결국 나는 지금보다 손톱만큼이나마 더 많이 순수한 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이런 말들을 천장에서 읽어냈다. 그러나 차마 발음하진 못했다. 두루뭉술하게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고 말하면서 끝을 흐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그가 전해준 이야기가 아직도 작가의 혀를 칭칭 감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모습이 순수한 나라면 이제라도 치매라는 청소부를 해고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만두세요. 그래서, 나를 가만두세요.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요양보호사가 환자를 잘 돌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가끔 방문한다. 그 집은 할머니가 요양보호사다. 아내인 할머니는 혼자서 치매 걸린 할아버지를 10년 넘게 직접 요양하고 계시다. 이른바 가족 요양이다. 할아버지는 치매가 심하다. 달리 말하자면, 할머니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고령의 할머니에게 치매 환자 요양은 힘에 부치는 일인데다가, 생계까지 깡그리 할머니 몫이기 때문에 그 고생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공단에서 나온 젊은 남자 직원은 할머니 사연을 듣다못해 왈칵 눈물을 쏟았다. 자신도 모르게 할머니를 안아드리면서 등을 다독였다. 할머니께서도 엉엉 우셨다. 사진을 찍어 ‘공감’이라고 이름 붙이면, 퓰리처 사진상을 받아도 될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 순간에 함께 하지 못하는 단 한 사람, 할아버지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어떤 치매는 평소 할 수 없었던 공격적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그날 밤, 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잠에서 깼다. 할아버지가 자기를 노려보면서 서 있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손에는 밧줄로 만든 올가미가 들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걸 할머니 목에 걸려고 했고, 할머니는 간신히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할아버지는 낮에 왔던 공단 직원과 자기 아내의 관계를 의심했다. 낯선 젊은 남자가 자기 눈앞에서 아내를 다정하게 안고 있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할아버지라는 남자는 십 년 넘게 자신을 돌봐 온 여자인 아내를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할머니는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요양병원을 권했다. 올가미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지금 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가고 싶다'를 되뇌이면서 우신단다. 그러면서도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신단다.     


작가는 하얀 종이를 떠올렸다. 하얀 종이 위엔 수많은 하얀 본능들이 잔뜩 적혀 있는 건 아닐까. 하얀 종이 위에 하얀 펜으로 쓰여진 탓에 눈에만 보이지 않았을 뿐, 우린 그 하얀 본능들을 어두운 인생을 배경으로 조금씩 알아가는 건 아닐까. 치매에 걸린 삶의 하얀 살점들이 죽도록 싫은 이유는, 어쩜 우리가 너무 밝은 인공의 빛에 길들여졌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나는 어떤 본능을 하얗게 드러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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