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눈을 떴다. 아니 떠졌다. 새벽 4시 30분. 코레일 앱에 접속. 반쯤 뜬 눈으로 KTX 시간표를 쭉 훑었다. 세상에! 꼭두새벽부터 경북 영주로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6시 기차말곤 2인 자리가 없었다. 예약은 아내의 허락을 받고 하기로 하고 다시 누웠다.
아내는 부처님처럼 눈을 뜨고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좋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청량산에 있는 하늘다리를 가고 싶다고 했던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너무 멀고 교통편도 불편하단 이유로 선뜻 맞짱구를 치지 못해 미안했던 나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기차표를 샀다. 아내의 허락을 받는 동안에도 좌석은 팔려 나가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6시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영주행 KTX 승차권이 그렇게 아슬아슬휴대폰에 꽂혔다. 도착지가 청량산이니, 출발지로 청량리만한 곳이 있을까 싶다.
기차표를 산 이후엔 만사형통 더하기 일사천리.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베낭에 간식 등을 넣는 덴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산에서 참외 먹는 기쁨을 알아버린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참외를 까다가 손을 꽤 깊게 베었지만, 그래도 산에서 이 놈을 먹을 생각을 하니 침이 고였다. 피묻은 참외를 잘 닦아 위생 비닐에 넣었다.
졸다 깨다 1시간 40분만에 영주에 도착했다.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동네 토박이 아저씨들은 선지 해장국을 드시면서 이번 지방 선거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서로는 학교 선후배 사이. 선배님, 후배님 하면서, 누군 외지 사람이라 안 되고, 누군 이번엔 빨간 당 후보라고 무조건 찍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민한 아내는 소머리고기 누린내와 경상도 사나이들의 목청 높은 사투리에 질려 밥을 반도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놨다. 둔한 나는 누린내도 못 맡고, 귀도 잘 안 들리는 터라 국물을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둔한 자에게 하늘이 내린 복이랄까.
영주역에서 청량산으로 가려면 일단 시외버스를 타고 봉화터미널로 가야한다. 또 거기서 두 번 시내버스를 갈아타야 청량산에 도착할 수 있다. 서울에서 영주역까지 1시간 40분이 걸리는데, 영주에서 청량산까진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묘한 세상이다.
국밥집에서 나와 한 20분쯤 걸어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지도앱에 표시된 건물과 실제 눈에 들어오는 간판을 맞춰 가면서 이 길이 맞는지 어림잡아 나아갔다. 요즘 지도앱들이 워낙 세심하기도 하거니와, 영주의 건물들은 세월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3~40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건물들은 마치 그 자리에서 태어나 영원히 살 것처럼 버티고 있었다.
영주 버스터미널에서 봉화까진 무탈하게 갔다. 급하게 자꾸 교통카드를 갖다 대려는 나를 말리시는 버스 기사님의 투박한 표정이 탈이라면 탈이랄까. 문제는 봉화 터미널에서 터졌다. 길찾기앱에선 분명 20분마다 1대 청량산으로 가는 16번 버스가 있다 했다. 그런데 터미널 터줒대감으로 보이는 매표소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16번 버스는 하루에 딱 4대 뿐이고, 다음 버스는 13시 30분에 있다고 하셨다. 이제 10시가 조금 넘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3시간 넘게 꼼짝없이 잡혀 있어야 할 판이다. 우리 부부는 어안이 벙벙했다.
터미널 나무 벤치에 편히 앉아 계셨던 할머니께서 손짓으로 우릴 부르신다. 청량산에 가려고 하느냐? 그러면 그 버스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 일단 재선이란 곳으로 가라. 거기에 가면 딱 1대긴 해도 택시가 있다. 그 택시를 타고 청량산에 가면 값도 저렴하고 시간도 많이 단축된다는 것이었다. 이 때, 뒤에서 소리없이 나타난 할아버지. 청량산에 가려고 하느냐? 재선말고 명호라는 곳으로 일단 가라. 거기에 가면 딱 1대긴 하지만 택시가 있다. 그걸 타고 청량산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이 때, 앞서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날카로운 지적. 명호에서 택시타면 비싸다. 여기서 명호까지 가려면 버스를 더 오래 기다려야 하고 많이 타야 한다며 타박하셨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으셨다. 눈치를 보아하니 할머니의 승리.
우리는 승자의 가르침에 따라 재선행 버스표를 사려고 매표소 앞에 섰다. 카드를 내밀었더니 매표소 할아버지께서 카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현금을 전혀 가지고 다니지 않는 서울 촌놈은 입금 계좌번호를 여쭸다. 매표소 할아버지는 어처구니 없단 표정을 잔뜩 지으셨다. 그 역시 안 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요 앞에 우체국도 있고 농협도 있으니 현금을 마련해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재선행 버스 출발시간이 임박했다는 것. 승리하신 할머니께서는 버스를 놓칠지도 모른다고 빨리 다녀오라고 신신당부 하신다.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서주시는 시골 어르신들의 마음에 우리는 계속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모처럼 깔깔대며 어린아이처럼 농협을 향해 달렸다.
여행의 이런 맛, 언제 맛봤던가.
가까스로 재선행 버스에 올랐다. 재선가는 버스가 맞냐고 묻자, 기사님께서는 재선도 가긴 간다고 하셨다. 이 버스가 10시 40분 버스가 맞냐고 다시 묻자, 옆에 있던 시간표를 꺼내 한참 보시더니 맞다고 하셨다. 느리게 사는 마을, 여유있는 기사님. 풍경 역시 훈훈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거리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긋한 연세의 어르신들 몇몇 분들이 밭일을 하시는 모습이 간혹 보일 뿐, 젊은이나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5월 짙어지는 연두의 행진과는 달리, 어르신들은 땅에 간혹 섬처럼 박혀 있을 뿐이었다.
재선에 도착. 이제 청량산에 가려면 택시만 타면 되는 것이다. 거의 90% 성공. 버스 기사님은 바로 앞에 택시를 타면 된다고 하셨다. 내 눈엔 아무리 찾아봐도 택시가 없었다. 앞에 있단 말만 믿고 직진. 차는 없고 택시라고 쓰여 있는 작고 동그란 간판이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택시 간판. 간판 아래 전화번호가 있었다. 여긴 한 때, 치킨집이었나보다.
통화 결과, 지금 타지에 나와 있어서 청량산엔 갈 수 없다는 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동네 수퍼에 가서 부탁해 보세요. 지나가는 차에 신세를 지던지. 나이 50 넘어 히치하이킹을 하려니 좀처럼 엄지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우리는 동네 수퍼를 찾았다. 사연을 들은 수퍼 사장님께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린 아들이 방과 가게를 구분하는 커튼 안에서 가끔 나와 아빠 얼굴을 보고 들어갔다. 가게를 맡길만한 어른은 없는 듯 보였다. 수퍼에 한 자리 차지하고 계신 아주머니께서는 자신이 가게를 봐 줄테니 택시비 받고 휭 다녀오라고 하셨지만, 수퍼 사장님은 그럴 순 없는 눈치였다.
결국 그 아주머니께서 손수 우리를 데려다 주셨다. 아주머니께서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를 말씀하신다. 여긴 좁은 동네다. 누가 돈 받고 외지 사람들 태어줬다고 소문나면 이만 저만 귀찮은 게 아니다. 택시 아저씨도 집이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어 영업을 잘 하지 않는다. 여기 사람들은 차가 없는 사람이 없어 사실 택시 장사가 잘 되지도 않는데, 이런 소문까지 돌면 입장이 참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수퍼 사장님도 아마 이런 이유로 고민 하셨던 모양이다.
아주머니께서는 포항 분이었다. 이쪽으로 시집온 지 26년 됐다고 하셨다.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바다가 보고 싶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바다를 싫어하신다고.
우여곡절 끝에 우린 드디어 청량산 입구에 도착했다. 감개무량 또는 천신만고 끝에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것 같았다. 청량산의 품에 안기자 마자 여정의 긴 사연들은 모두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것이 되었다.
솔향기가 영혼을 파고 들었다. 새벽 4시 30분 기상과 여기까지 달려온 7시간 가까운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청량산에 가고 싶다고 했던 아내는 이제서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봤지? 여기가 내가 오고 싶어 했던 청량산이다! 발을 감싸는 대지의 푹신함. 안구를 마사지 해주는 녹색의 향연이 계속 되었다. 감탄에 감탄을 이어가다보니 멀리 청량사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