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fe barista May 11. 2022

청량산 기행기(2)

더 젊을 때 다닐 걸이란 말은 이제 그만

청량사로 들어가는 길에 큰 고목이 썩으며 누워있다. 그 위로 이끼가 자란다. 죽음 위에서 피어나는 생명. 봄산은 죽음과 생명을 나누지 않고 하나로 묶어냈다. 산속에서 시를 짓고 차를 파는 시인이 쓰러진 고목 옆에 헌정시를 바쳤다. 제목은 휴(休).




며칠 후면 부처님 오신날. 청량사는 행사 준비 중이었다. 알록달록한 연등이 파란 하늘과 소나무 끝에 달려 한가로이 흔들렸다. 야외 행사용 의자가 트럭에서 내려졌다. 사람도 간신히 오르는 그 가파른 길을 트럭이 어떻게 올라왔을지 궁금했다. 부처님의 자비인지, 기사님의 오랜 노하우인지 답을 고르다가 그만뒀다. 사람 생각은 참 쓸데없다. 그 쓸모 없음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만 둘 때를 모른다.



참! 하늘다리를 보러 왔지! 내일이 개학이란 걸  알아차린 초등학생이 방학숙제하듯 후다닥 다시 산을 오른다. 후다닥은 금새 후덜덜로 바뀌었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으나, 내 체력은 그렇지 못했다. 저질 체력은 돼지 소리를 냈다. 아내는 벌써 10미터 이상 앞서 나갔다. 나는 연신 먼저 가라고 손짓 했다. 난 이미 틀렸으니, 당신이라도 살아남으라는 숭고한 희생 정신은 아니었다. 이왕 구겨진 남자의 자존심은 포기하고 들꽃이나 실컷 구경할 요량이었다. 윤동주 시인은 반딧불이를 달 부스러기라고 했는데, 청량산 들꽃은 별 부스러기쯤 되는가 보다. 아니 이 정도 자태면, 별이 꽃 부스러기라고 해야 할 정도다.



갈수록 산은 험악해지고, 숨소린 발악한다. 이건 산이 숨겨놓은 비경을 토해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 꼴깍꼴깍 숨이 턱을 지나 두개골까지 차오르기 직전, 청량산은 쨘하고 숨겨두었던 하늘다리를 보여주었다.



엄마가 갓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산통을 잊는다고 하더니 내가 그 꼴이다. 내가 등산을 다시 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등산할 때마다 돼지가 될 것이라고(사실 그렇다), 저주란 저주는 다 퍼붓다가도 이런 풍경을 보면 다 잊는다. 자연을 경외하고 삶을 축복한다.



내리막 길은 내 전문이다.  오를 때 이마를 발로 밀어내던 중력이 이젠 내 팔을 잡아 끈다. 적군이 아군이 된 셈. 게다가 아직 내 무릎 도가니는 쓸만하다. 오르막 전문 산악인인 아내를 추월하기도 한다. 대단한 스피드에 취해 발을 헛딛기도 한다. 몸이 무거울수록 속도감을 더 짜릿하게 느낄 수 있다. 사실 이쯤되면 내 다리는 내 것이 아니다. 자동운행 모드로 산을 내려가는 것이다.


청량사 찻집은 시간도 쉬는 곳. 시간은 쉬지만, 사람은 일을 쉴 수 없는 지, 와풀 기계는 가래떡을 굽고 솔잎차는 사람을 취하게 했다.

 


한국 100대 명산이라는게 있단다.

하나씩 가볼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청량산 기행기(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