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터뷰를 봤다. 3명의 패널이 들어왔고 세 명 모두 한 사무실에서 접속할 줄 알았는데 한 명만 사무실에서 접속하고 두 사람은 집에서 접속했다. 의외라면 세 사람 모두 굉장히 친절했다는 것. 당연히 아무도 웃지 않고 압박 면접을 할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나보다. 세 사람 모두 너무 친절해서 놀랐다.
한 명의 패널은 인재관리 부서에서, 두 명의 패널은 같이 일하는 부서의 사람이었다. 직속 상사라고 표기된 분이 주로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영 관련 없을 줄 알았던 분이 부서 소개부터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일 지 소개하고 직책에 관한 모든 답변을 해주었다. (실질적인 상사???!)
인터뷰 징크스가 있는 걸까... 내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말을 못했다. 질문의 요지는 알아들었으나, 막상 말을 하고 나니 산으로 가고 완전히 동문서답을 하질 않나, 정확한 에피소드가 기억나지 않아 10초정도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내가 이 직책의 적임자라고, 이미 모든 스킬을 겸비했다고 외치고 싶었는데 질문은 나오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고 준비한 '우리가 왜 당신을 뽑아야 하죠?' 질문에 대한 답도 하지 못한 채 1시간의 면접이 마무리 됐다.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지만, 열심히 준비했다.
그동안 인터뷰 준비에 완전 헌신했고 후회가 없다. 인터뷰 후에 바로 한 일은 그동안 공부했던 모든 문서를 벅벅 찢어버렸다. (대청소를 하다보니 이게 가능해졌다! 하나가 끝나면 완전히 끝. 해방이다!)
마지막 질문 중 언제쯤 일할 수 있냐는 질문에 준비했던 대답은 3~4월이지만, 소심하게 2~3월이라고 말해버렸다. 이렇게 말해 놓고 나니 지금 언제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내 삶을 포기한다는 게 싫었다. 책 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앞으로 나올 책들도 많은데 행복한(?) 전업 작가의 삶을 내려놓는다는게... 물론 일을 통해 더 나은 책을 내겠다는 더 큰(?) 뜻이 있어 지원한 것이지만, 막상 지금 가진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다시 짐을 싸고 돌아다니는 신세(?)를 상상하니 조금 억울하고 슬펐다.
인터뷰가 끝나고 짝꿍 앞에서 엄청 억울해했는데, 그는 내가 인터뷰에 떨어질 것 같아서 그런 건지 물었고 난 준비 된 걸 다 보여주지 못해서 슬프다고 했다.
"그니까, ENFP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해서 지금 이렇게 속상해 하고 있는 거야?"
자주 그의 탁월한 표현에 감탄한다. 어떻게 내 마음을 찰떡같은 단어로 표현했지? 나도 몰랐던 내 속내를 딱 집어서 표현해준 그의 말에 나의 억울함은 그대로 녹았다.
그와 대화하면서 어쩌면 내년 초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완전히 기억에서 사라지고 앞으로 고칠 원고에 대한 생각과 이제는 마음 놓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볼 수 있겠다는 일탈의 계획이 들어왔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이젠 글을 쓰겠노라고 책상에 앉았는데, 마침 메일이 왔다.
내일까지 추천인의 정보를 메일로 보내주세요.
잉??????????????
인터뷰를 봤던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메일을 보낸 건지, 인터뷰를 통과한 사람만 이런 메일을 보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메일이 왔다.
한국 기업은 일 해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외국계는 면접 후에 reference check 이라고 해서 말하자면 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지, 추천인의 추천장/추천서를 받는 단계가 있다. 추천서 단계는 약간 형식적인 것이고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별 문제는 되지 않지만, 대체로 마지막 단계가 아니면 묻지 않는다. 나와 함께 일했던 과거와 현재의 상사들에게 추천인이 되어줄 수 있는지, 그들의 연락처를 보내도 되는지 연락을 남겼다.
현재의 마음으로는 그냥 지금 살던 대로 살고 싶지만.... (사무실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이 두렵...다..... 다시 짐을 싸는 것도 엄두가.....) 이것은 지금 생각할 것이 아니고 항상 내가 선택한 것들이 맞는지 고민하는 게 기본값이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잘했다고 할테니, 지금 내가 할 것은 내가 하기로 한 것들을 하기!
내일은 진짜 마지막 대청소 날이다. 그리고나서는 본격적인 원고 수정! 오늘 편집자님께 1월 초쯤 표지 디자인이 완성될 거라고 해주셔서 엄청 기대가 된다. 상상만하던 책 출간이 눈 앞에 있다는 게 점점 실감된다. 꿈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가 너무 기대된다. 어떤 일들이 계속 일어날지 나는 얼마나 더 성장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