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서는 이혼할 수 있습니다
멀고도 가까운 북쪽 동네를 공부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이혼입니다. 북한 주민도 이혼을 합니다.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제한적입니다. 출간된 도서와 탈북민의 인터뷰를 모았습니다.
1980년대에 북한에서 부부가 이혼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국내서 출간된 북한 소설 「벗」이 예시입니다.
「벗」은 북한 태생 작가 백남룡이 쓴 소설입니다. 1980년대 북한에서 진행된 이혼 재판의 조정 과정을 다룹니다. 판사는 이혼을 요청한 부부를 만나 이혼하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실제 1990년대 후반 북한에서 이혼율이 올랐다고 합니다. 1997년부터 시작한 '고난의 행군' 때문입니다. 당시 자연재해와 경제붕괴로 아사자가 속출했습니다. 당(노동당)이 시행했던 배급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대신 장마당이 들어섰습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물건을 팔았습니다. 특히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여성이 많아졌습니다. 출근에서 남성보다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남성의 위상은 낮아졌습니다. 부부 간 싸움이 잦아져 이혼율이 급증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더라도 부부가 따로 살기도 합니다. 재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다른 집에 머무르거나 장사하며 만난 사람과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경우입니다.
부부가 이혼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이혼이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있어서기도 합니다. 별도의 재판도 거쳐야 합니다.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합니다.
실제 북한에서는 이혼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당(노동당)이 해방 직후 합의 이혼 형태의 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은 오로지 재판을 통해서 이혼할 수 있습니다.
절대 이혼할 수 없진 않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부부 중 한 명이 불임일 때 이혼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부부 중 한 명이 외도를 포함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을 때입니다. 고부갈등과 성격 차이로도 이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자료는 없습니다.
복잡한 이혼절차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 이혼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2010년 이후로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한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함경북도 경원군의 이혼 건수가 2006년에는 분기별 10건 정도였지만, 2009년 화폐개혁 후 7~8배 증가했으며 2014년 들어선 15배 증가했습니다.
2015년 중앙일보가 인용한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보도에 따르면, 한 북한 내부 소식통은 “딸을 시집 보내고 나서 장마당에 가 두부 한 모를 사서 (집에) 왔더니, 그 사이 시집을 간 딸이 보따리를 가지고 왔다는 말이 돌만큼 날이 갈수록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두 사례는 북한 내 이혼이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