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정해져 버린 우리 사회 속 미의 기준
언제부터인가 피부색은 나의 스트레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어렸을 땐 피부톤이 어둡다고 놀리는 친구들이 있었고, 고등학교 땐 생명과학 시간에 한 선생님께서 멜라닌 색소를 설명하면서 내 피부를 예시로 들어 설명하신 적도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장난이었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상처가 될 때도 있었다. 주변에 뽀얀 피부를 가진 친구가 있으면 너무 부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것들이 익숙해져서 무뎌졌지만, 마음 한편엔 항상 나도 하얀 피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20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것 리스트에 ‘백옥주사 맞기’가 있었다. 유명 가수가 백옥 주사를 맞고 피부톤이 밝아졌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여러 피부과에 알아본 결과,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서 포기했다. 20살이 되어서 화장을 제대로 시작하기 시작했고, 화장을 할 땐 조금이라도 더 밝게 톤업을 하는 건 필수가 되어버렸다. 하얀 피부를 동경하고 무의식적으로 피부 톤이 밝아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내가 왜 하얀 피부를 갖고 싶은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냥 어렸을 때부터 어두운 내 피부색이 싫었고 하얀 피부가 부러웠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최근에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다.
며칠 전 SNS에 내 얼굴이 나온 한 사진을 올렸었다. 우연히 그 사진을 찍는 순간 햇빛에 얼굴이 비춰서 엄청 하얗게 나온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친구 J와 대화를 하다가 SNS에 올린 사진이 피부가 하얗게 나와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친구는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OO아, 그거 다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 아닐까?
넌 있는 그대로 아름다워
각자 가진 분위기와 톤은 존엄하다고 생각해
하얀 피부를 갖고 싶었지만 단 한 번도 왜 하얀 피부가 좋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왜 난 하얀 피부가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을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J의 말대로 사회가 만들어낸 미의 기준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는 어두운 피부보다 밝은 피부를 선호했고 이를 위해 톤업을 위한 파운데이션, BB크림, 쿠션 등의 화장품이 존재했다. 그리고 난 부끄럽게도 이 사회가 만든 미의 기준을 추종하고 있는 구성원이었고 동시에 우리 사회의 미의 기준을 만드는데 동조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회가 만들어낸 미의 기준은 비단 피부색뿐만이 아니다. ‘하얀 피부에, 큰 눈, 오뚝한 코, 빨간 입술, 브이라인 턱’,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기준이 아닐까. 강남 한복판을 지나가면 수많은 성형외과 광고를 볼 수 있다. 광고모델의 얼굴은 대부분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았다. 가끔은 아이돌 무대를 보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한명씩 보면 모두가 너무 예쁜데, 다같이 한 화면에서 보게 되면 서로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만의 미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그 미의 기준에 맞춰가려 애쓰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J는 이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OO아, 이제 너의 인생에 도움 안 되는 그런 기준들 다 떨치고
위풍당당 걸어 나가길
진짜 지금도 충분해
아니 넘쳐
J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 존재 자체만으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그 아름다움은 각자의 개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피부색이 밝은지, 어두운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이다.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 굳이 맞추어 가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다. 누구나 다 똑같은 미의 기준을 적용하려고 애쓰다 보면 먼 훗날에 우리 사회의 모든 인간은 강남 성형외과 광고에 있는 사람들처럼 닮아갈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가치 있음과 아름다움을 알고 세상을 향해 위풍당당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생각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J에게 고마웠다.
동갑인데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해준 친구가 존경스러웠다.
J가 나에게 해준 그 말을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해주고 싶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기준들 다 떨치고, 위풍당당 걸어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