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쨈빵 Dec 06. 2022

수다가 필요해

아니, 들을 귀가 필요해



‘말’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아랫집 청소기 목사님의 아내가 (여전도회에서 나와 같은 팀이었던) 그 단발머리 사모님입니다. 언제나 따뜻하고 다정하셔서, 교회 아기들이 사모님을 많이 따랐습니다. 사택 사모님들, 교회 집사님들 할 것 없이 그분을 좋아했어요. 친해지고 보니 얼마나 마음 고운 분인지 더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은 거지만, 사모님은 평소에 남편 목사님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편안했던 이유 중의 하나였던 것 같아요. 목회자의 아내로서 자기 남편의 흉도 자랑도 들추지 않는 것이 그분이 지키고 있는 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무릎을 쳤어요. ‘이거, 따라 해야겠다!’     


부교역자 사모로 있을 때는 교인들과 교제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예배시간에 또는 교회 봉사로 만나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어요. 아이 또래가 비슷하다든지, 같은 어린이집에 보낸다든지 해서 간혹 가깝게 지내는 분들도 있지만요.      


담임 목회를 하게 되면, 교인들과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됩니다. 각 가정의 사정을 알아야 같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책임감 있고 친밀한 ‘목양’을 하는 것이지요. 부교역자 시절에도 그랬듯, 나는 아주 천천히 마음을 열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적응이 느린 것이 더 큰 이유입니다.      


교회 개척 초기에는 교인들이 한 마디를 하면 나도 한 마디를 했습니다. 그게 성의 있는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집사님 남편 얘기를 듣다가 비슷한 경험을 꺼내기도 하고, 권사님이 자녀 얘기를 하시면 맞장구를 치면서 말을 보탰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맞나 싶어졌습니다. 집사님 권사님들이 본인 얘기는 하시는 데는 열심히지만, 내 얘기를 들을 때는 너무 시큰둥하셨거든요. 몇 분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적잖이 섭섭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내 역할을 조금 알겠거든요. 사모는 ‘듣는’ 사람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말은 목사님이 해서 그런 걸까요? 교인들은 사모가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단발머리 사모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분은 참으로 듣는 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모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잘 들어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얘기도 참 잘 들어주셨거든요. ‘흐흐흐.. 그렇구나’ 하면서요.      


사모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아주 문제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솔루션(해결책)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열심히 들으면서 생각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드리면 좋을까’     


그런 식으로 상담(?)을 망친 일이 참 많습니다. 교인들이 원하는 것은 ‘들어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마음에 새겨놓고는 자꾸 실수를 해요. 심각한 이야기라면 더욱 상황에 빠져들어서 나도 모르게 조언을 해드리고 싶어집니다. 정말 성심 성의껏 생각해서 ‘이러면 되지 않을까요?’ 얘기를 하면 반응이 영 찜찜합니다. 아무래도 바라시는 답이 아닌가 봐요. 밤새워 공부를 했는데 시험을 망친 기분이 듭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스럽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마음먹습니다. ‘다음번에는 정말 듣기만 할 거야!’     


실컷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자꾸 아는 소리를 하니까 말을 꺼내신 분이 불편한 겁니다. 그저 잘 듣고 마음에 남는 내용으로 기도하면 되는 거였어요. 내가 뭐라고 답을 찾아내드리겠습니까. 그건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요. 마음 고생을 돕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는 말이 정답입니다.      


사모는 ‘아무 말’을 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속상했습니다. 가끔 남편 흉, 자식 자랑 펼쳐 놓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신나게 얘기해 본 적도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후회를 했기 때문에 이제는 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도 예수님만 자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백번 천 번 맞는 말씀입니다. 내 말 때문에 상심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보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아요. ‘사모는 더욱 말조심을 해야 한다’ 족쇄로 삼을 필요 없습니다. 쓸모없는 말을 뿌리지 않으면 부끄럽게 거둘 일도 적으니까요. 사모는 말을 못 해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긴장을 놓지 못해 불편한 사람도 아닙니다. 단순하게 살기에 참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입니다.    

  

셀럽도 아닌데 내 말 습관이 그렇게 중요하다니, 조금 특별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억지 같지만, ‘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생각하고 말을 가리자고요. 오, 벌써 입이 무거워집니다.   

   

흠이 되거나 꼬투리를 잡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아니고, 단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자처하는 것이니, ‘사모라서 말도 편히 못 하는구나!’ 서글퍼할 일이 아니지요.      


교인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거나 교회의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되면 나는 입을 다뭅니다. 누구를 만나도 “그거 아세요?” 하고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말은 금방 퍼질 테니까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그냥 묵묵히 듣습니다. ‘사모님은 교회 소식에 늦는 사람’이라 여겨지는 편이 차라리 나아요. 예민한 질문에 답할 일이 적어지거든요. 사모가 교회의 소식통이 되면, ‘사모님이 그러시던데?’ 하는 말이 돌아다닐 겁니다. 뼈밖에 없던 말에 살이 붙고 겹겹이 장식이 달라붙는 건 시간문제예요.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고 슬퍼하고 위로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교회 소식을 언제 듣고 얼마나 아는 게 뭐 중요한가요. 어차피 사모는 듣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참 간단하고 좋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매거진의 이전글 사모가 된 소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