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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Dec 14. 2022

나도 며느리랍니다

a.k.a 고부갈등




우리 가족은 박공지붕 집 1층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 2층에는 시부모님이 사세요. 건물로 들어오는 현관을 공유하고, 각 집의 입구는 따로 있습니다. 여기에 산 지 4년 되던 해에 시부모님이 이사 오셨어요. 그리고 3년째 아래위 집 이웃으로 살고 있습니다.      


두 분은 개척하신 교회를 30년 정도 섬기시다가, 퇴임 후 작은 임대아파트로 이사하셨어요. 사택을 정리하고 나오면서 살림을 많이 버리셨다는 데도, 집안에 짐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우리가 놀러 가면, 둘러앉아 밥 먹기가 빠듯할 정도였어요.

     

몇 년 전에 아버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적이 있는데, 하나님 은혜로 재활이 잘 되었어요. 크게 편찮으셨던 것에 비해 거동을 잘하십니다. 두 분 모두 식후마다 약을 한 보따리씩 드시지만,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으십니다. 대중교통으로 멀리까지 다니실 정도로 연세에 비해 정정하세요.

     

우리 집주인분이 2층을 전세로 내놨다고 했을 때, 시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아버지 어머니, 윗집으로 오시면 어떨까?” 말을 했어요. 둘이서 차로 이동 중이었는데, “어, 좋네. 엄마한테 전화해 봐.” 대답 하더군요. 나는 바로 전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멈칫하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과연 잘하는 일인지 혹시라도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지 혼란스러웠어요. 심장이 점점 크게 뛰었습니다.


기도했어요. ‘하나님, 뭐가 맞는 건가요?’ 묻는 즉시로 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 생각이 맞을 거야. 머리 굴리지 말자.’


‘네, 주님.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겠습니다.’


이삿날이 6개월 뒤로 잡혔습니다. 오시라고는 했지만,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나 봐요. 나는 월요일부터 지독한 몸살을 했습니다. 닷새 동안 꼼짝없이 앓느라 집안일을 하나도 못했습니다. 시댁 이삿짐 들어오는 금요일, 2층보다 우리 집이 더 난장판이었어요.    

  

도시의 외곽에 위치해 있어, 집 주변에 상가나 편의시설이 없어요. 임대아파트보다는 넓지만, 잘 지어진 좋은 집이 아닙니다. 그냥 가까이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로 이사를 권한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는 좋아하셨습니다. 두 분보다 우리 집 세 아이들이 훨씬 더 좋아했고요.     


어머니는 내게 고맙다고 하시며, ‘며느리가 아니라 딸처럼 하라’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는 곧바로 ‘친정엄마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사 첫날 우리 집 상태를 보고 결심을 하신 것 같아요. 우리가 집을 비웠다가 귀가하면, 맙소사! 빨래, 설거지, 청소가 돼있었습니다. “어머니, 안 해주셔도 돼요” 그러면 어머니는 알겠다면서 빙긋이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외출한 틈에 집안일을 해놓으셨어요. 나는 하나도 좋지가 않았습니다. 솔직히 싫었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말하지 않았지만, 원치 않는다는 표현을 여러 번 했어요. 그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버렸습니다. 어머니의 호의를 무시한 셈이 되니 아마도 많이 섭섭하셨을 거예요. 내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며느리지 딸이 아니기 때문에 ‘아, 진짜 싫다니까요!’ 말을 못 하잖아요. 그렇다고 계속 그리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 뒤로는 집안일을 도와주시려고 하질 않아요. 시어머니라서 싫은 게 아닙니다. 잘 하든 못 하든 내 집 살림은 내가 하는 게 편해요.


시부모님은 부부 사이가 좋으시고, 두 분 모두 말수가 적으십니다. 평생 신실하게 주의 일을 하셨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사십니다. 두 분께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우리 어머니 고생하신 거 비하면 나는 사모라는 호칭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어머니가 보실 때 큰며느리(바로 나)에게 흠이 있을 겁니다. 나도 가끔은 시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십니다. 나랑 성격도 나이도 살아온 인생도 다르시죠. 어머니 마음이 내 마음을 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도 나를 그냥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못마땅할 때도 있으실 텐데. 내색을 하지 않으시는 건, 며느리를 이해해서라기보다는 ‘수용’하는 마음이실 겁니다. ‘그래, 너는 그런 사람이구나.’ 마음이 참 넓으신 분입니다. 내게 늘 “잘했네.” 하시니, 나도 어머니를 따라 “잘하셨어요.” 그럽니다. 어머니의 즐거움과 나의 즐거움이 다르고, 각자의 스트레스도 다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고부갈등 제로의 비결인 것 같아요.


우리는 엄마-딸 같지는 않지만, 좋은 ‘시어머니-며느리’ 사이입니다. 가까운 이웃지간이에요. 음식을 나눠 먹고, 필요할 때 서로 돕습니다. 2층에 다른 가정이 살고 있다면, 지금보다 살기가 훨씬 불편했을 거예요. 단독주택에 시댁과 위아래로 세 들어 산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재밌고 특별한 경험입니다.     


시아버지, 남편, 시동생이 모두 목사님이니까 목회자 집안이에요. 우리 집안에도 다른 집안처럼 다양한 사건 사고가 있고, 원치 않는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만, 힘든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집집마다 다를 수 있겠지요.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관계의 문제가 생겼을 때의 반응 말입니다. 돈은 항상 없고, 변함없이 아프고, 오래도록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없이는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전부를 알 수는 없습니다. 실은 다 알 필요도 없지요. ‘하나님의 선한 의도가 있을 거야’ 끝까지 믿는 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발휘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모습이 때로 미련하고 나약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지극히 약하고 아는 것이 적습니다. 나의 무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마냥 기도만 하는 시댁의 분위기를 답답하게 생각한 시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기도가 가장 확실한 문제 해결법이더군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실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내가 결혼을 참 잘했구나.’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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