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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Dec 19. 2022

사모 콤플렉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연애도 좋고 결혼도 좋지만, 사모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남편이 사역자인 이상 사모가 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멋도 모르지만 교회에 가면 나는 사모입니다. 누군가 내 정체를 알면 ‘저 사람, 별로’라고 할 것 같았어요. 모자란 티가 날까 봐,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집에 왔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람들을 피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다른 사모님들에게 배우려고 말과 행동을 유심히 봤습니다. 책을 사서 읽었어요. 그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나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뇌 용량이 아주 작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뵀던 그분이 집사님인지 권사님인지, 어디 사시는지, 교회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로 섬기시는지 입력이 잘 안 됐습니다. 제일 어려운 건, ‘이름 외우기’였어요. 성씨라도 생각나면, ‘O집사님’이라 호칭을 할 텐데, 전혀 생각이 안 납니다. 사람을 못 알아보고 할 일도 못 챙기고, 적당한 타이밍에 적절한 말을 할 줄도 몰랐습니다. 센스가 없는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 교회 가면 힘들고 집에 오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부목사 사모로 5년 정도 있는 동안, 교회에 아는 분들이 조금씩 늘었습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천천히 긴장이 풀렸습니다. 할 수 있다면 ‘괜찮은’ 사모가 되고 싶어 졌어요. 교회에 정말 좋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친절하고 매너 있는 분들이요. 난처한 질문을 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저 여자가 어떻게 하나’ 색안경을 쓰고 나를 볼까 봐 두려웠는데, 누구도 그러시질 않았어요.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교인들은 사모에게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아주 다행이죠. 제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고, 아는 분들도 나를 더 궁금해하지를 않더군요. 그냥 ‘부목사의 아내, 누구누구 엄마’ 정도로 편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성격상, 나는 그게 편하고 좋았습니다. 이제 좀 교회가 익숙해지는 마당이었어요. 딱 그때, 남편이 개척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담임 목회를 하게 되니, 마음에 걸리는 ‘약점’ 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우리 친정아버지는 공무원이셨어요. 여유로운 형편은 아니었지만, 생활고는 모르고 컸습니다. 무던한 친구들과 잘 지냈고, 평범한 사람들과 직장 생활을 했어요. 인생에 굴곡 같은 걸 경험해보질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불화, 약한 체력, 10년 몰래 연애 정도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전부입니다. 크게 망하거나 엄청 아프거나 사람 때문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은 일이 없어요. 소위 ‘고생’을 안 해봤죠. 그게 나의 콤플렉스가 됐습니다. 교인들 중에 힘든 일을 당하는 분이 있을 때, 위로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경험치가 없으니까요. 그럴 때는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개척하고 시간이 빠르게 흘렀습니다. 또 조금씩 긴장이 풀렸어요. 우리 교회에 진짜 좋은 분들이 많거든요.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목회자 부부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용납해 주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감사해요.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느 날은 B권사님과 K집사님이 대화하시는 방 앞을 우연히 지나치게 됐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문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빙긋이 웃었어요. 집사님이 무슨 고민을 털어놓으신 모양이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평소 내가 하는 고민이랑 비슷한 내용 같았습니다. ‘시원찮아서, 잘 못 해서 어떡해요..’ 뭐 이런 분위기요. 참 좋은 분들이거든요. 근심 있는 분에게 ‘나도 마찬가지예요’ 공감을 해드리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마음을 열었습니다.      


“저도 제가 나이에 비해 경험이 없는 게 늘 마음에 걸려요. 고생도 안 해보고 험한 일도 안 겪어 봤거든요. 그래서 힘든 일 당한 분들에게 어떤 도움을 드려야 하는지, 잘 몰라요. 사모로서 아주 부족하구나. 늘 생각합니다.”     


그랬더니 권사님이 얼른 “지금 잘하고 계시는데요. 뭘” 그러셨어요. 살면서 어려움 안 겪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사모님도 분명히 힘든 일이 많았을 거다’ 하셨습니다.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간 것뿐일 거라고요. “하나님 은혜네요. 사모님.”     


그 말이 참 위로가 됐습니다. ‘어설프고 모자란 사모’라는 마음의 짐이 좀 가벼워졌어요. 생각해보니,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다양한 증상에 시달리며 아팠고, 이런저런 마음고생을 잘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하죠. 정말 하나님 은혜입니다. 어려움 당하는 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어요. 오직 은혜로 지나가게 하실 것을 믿고, 같이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어려움의 깊이와 크기, 그 끝을 아시니까 말씀 따라 기도하면 되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또 하나의 심각한 약점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전 교회에서 전도훈련을 한 적이 있어요. 첫째가 어릴 때라 오래 망설이다가 뒤늦게 훈련 신청을 했습니다. <전도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어요. 나도 예수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외울 것이 많고, 숙제도 많았습니다. 훌륭한 강의도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유익했어요. 출석, 과제, 전도 회수, 교회로 인도한 사람 수.. 같은 것들이 평가됐습니다. 교회 벽 포스터에 훈련자 명단이 있고, 이름 옆에 길게 스티커를 붙여서 성과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에 집중하려고 애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하고 싶었거든요.     


훈련기간의 끝이 다가올수록 내 안에 의문이 커졌습니다. ‘나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짜 있는가.’ 무겁게 마음을 눌렀어요. 길거리를 지나는 이름 모를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마음이 차가운 사람입니다. 사랑이 없어요. 주님께 감당 못할 사랑을 받으면서, 베풀고 나누는 데는 인색합니다. 이런 모습이 주님께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고개가 안 들어지고, 기운이 빠졌습니다. 이런 사람이 무슨 주의 일을 합니까.     

 

‘사랑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변치 않는 기도제목입니다.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고 용납하시는 아버지 마음, 잊지 않기를 매일 구합니다. 주님이 유심히 보시는 그 사람, 하나님이 눈물 흘리시는 그 자리, 나도 품게 해 주시길 기도해요. 자신도 온전히 사랑할 줄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면 좋을까요. 나에게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긍휼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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