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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르 Aug 20. 2023

결국, 엄마를 울리고 말았다.

에어컨 바람이 닫힌 방문 틈으로 솔솔 스며들었고,
창문 틈으로는 옅은 햇볕이 내리쬐었다.
모든 게 여느 때와 같이 평범했고, 평소와 다른 것은 딱 하나,
이유 있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바로 나였다.

          

2022년 7월


컴퓨터 앞에 앉아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지만,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초점 없는 눈빛과 갈피를 못 잡는 마우스의 움직임의 연속.  그날은 2년 반동안 준비했던 회사의 최종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대한민국에 회사가 이 한 곳뿐이겠냐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그 기분은 어딘가 처절했는데, 익숙하기도 했다. 간절한 것을 기다리는 기분은 왜 이다지도 비슷한 걸까. 예를 들면, 나 홀로 좋아하던 이의 연락을 기다리던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너무나 간절하면서도 동시에 알고 싶진 않은 그 사람의 답장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방 밖에선 엄마와 이모가 조용히 소곤거리는 소리와 티비 소리가 조용히 뒤엉켰다. 평소엔 그 나른한 분위기의 오후를 좋아했지만 하필 이런 날 이모가 있다니-, 불합격이라면 방구석에서 말 한마디 안 하고 잠들 계획이었는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어쩐지 이모가 있으면 좀 더 멀쩡한 척을 하게 된다. 완전한 내 편은 아닌 그녀의 존재가 마치 프리즘처럼 나의 현실을 낱낱이 반사해 냈기 때문이다, '빈털터리', '무능함', '게으름', '불효녀', 그 형형의 색들이 도로 마음에 콕콕 박혔다. 그래서 이모가 오는 날은 좀 더 정신이 바짝 섰다. 무엇보다 이모가 성격이 여리고 따뜻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모는 이런 날 응원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또 그게 그런대로 멋쩍은 사람이고. 


합격자 발표가 늦어지면서 인내심이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원래라면 전날 발표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다섯 시가 다 되도록 공지가 뜨지 않길래 회사로 전화를 했더니, 내일로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당일이 되어서도 공지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당황했다.) 오후 3시가 넘어서자, 마침내 “합격자 발표”라는 게시글이 짠 하고 나타났다. 뜨거운 피가 머리를 삭 훑고 지나갔다. 급히 화면을 확인하자 눈에 익은 수험번호와 익숙한 성 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합격이었다.


이상한 필기시험을 치르고, 나조차도 알아들 수 없는 말들을 주절댔던 쪽팔린 면접을 치른 끝에 얻은 결과물이었다. 합격을 확인하자 그동안 잊고 있던 희망과 꿈들이 범람했다. 근 10년 동안 미뤄둔 말레이시아 여행을 해야 했고, 언니의 말을 빌리면, 쓰디쓴 오렌지가 거리 곳곳에 가득 열려있다는 지중해의 스페인을 가야 했고, 만년설에 뒤덮인 마터호른과 융프라우를 볼 수 있는 스위스를 가야 했다. 그런 꿈을 실현하며 좋은 인연까지 만날 수 있으면 더없이 완벽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와중에 가장 좋았던 건, 더는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적 해방감이었다. 서른이 넘은 딸의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나이 든 부모님에게 드는 죄책감과, 적은 봉급으로 일하고 있는 언니에게 받는 용돈은 어느새 고마움보다는 빚처럼 느껴진 지 오래였다. 그 빚을 적립하는 짓을 그만두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자유다. 마치 무죄를 선고받고 깊은 감옥 속에서 막 풀려난 사람처럼 끝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 해방감이 막연한 꿈과 희망보다 더 좋았다.        

        

밖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두 여자들에게 번복되지 않을 기쁨을 전해주기 위해 수험번호를 몇 번 더 확인하고서 긴장되는 걸음으로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안 봐도 결말이 뻔한 일일드라마의 재방송을 보며      

저들만의 오후를 보내고 있던 엄마와 이모에게 최대한 덤덤하게 합격 사실을 알리려고 애쓰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참으며) 저 합격했어요.”               

 

기뻐서 평소와 같이 박수를 칠 줄 알았던 엄마는 마치 사고소식을 들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뭐?’도 아니고 ‘에에?’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엄마의 얼굴은 한참을 딱딱하게 굳어있다가 이내 흘러내렸다.    

엄마는 행복감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보다도 더 큰 감정을 느끼고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옆에 있던 이모가 엄마와 나를 끌어안고 울먹였다. 이모는 엄마와 나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제야 굳은살이 박여 딱딱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제 우리 언니 고생 끝이네.”  
                   


지난 시간 동안 이모의 의식을 가장 크게 지배하였을 그 말이 그녀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중에 이모는 나에게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미안해했지만, 사실 그 말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큰 안도감을 주었다. 한낱 사무직 월급쟁이가 누군가의 고생을 끝낼 순 없겠지만, 더는 짐을 지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확인받는 기분이었달까.  

              

엄마를 쳐다보았다. 나의 가슴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에, 볕에서 오래 일을 해서 쪼글쪼글해진 피부에 덮인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그 사이에서 빛나는 엄마의 눈동자에는 희망과 안도와 기쁨이 넘실댔다. 그 눈빛에 나는 잠깐 우쭐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머쓱한 기분이 들어 눈물을 조금 짜내다가 그쳤다.

      

이것저것 기웃대다가 안착한 분야에서의 2년 반이라는 준비 끝에 얻게 된 합격 통보였다. 기쁨이나 환희보다 안도가 가장 먼저였다. 엄마는 따로 살고 있는 언니와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다. 이미 생업에 찌든 언니와 동생은 덤덤히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거창한 축하파티랄 것은 없었다. 그런 게 더는 필요치도 않았고.

                     


대신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편안하고 깊은,

다음날 깨어서도 기분 좋은 그런 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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