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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is unexpected Sep 06. 2023

2. 디자인과 예술: a. 예술의 역사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조금만 특이하게 작업을 하거나, 작업에 자신의 독특한 풍이 일관되게 묻어나는 사람에게 으레 “너는 디자이너라기보단 예술가에 가깝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를테면 소비주의 시대에 맞물려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것이 디자인인데, 그에 맞지 않게 상업적인 성향이 적거나 없다는 뜻일 테다. 혹은 (그 말을 하는 이가 생각하기에) 지나치게 작업자의 자아가 투영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어떤 뜻이든지 간에 디자인과 예술을 대척점에 놓인 것으로 전제했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그런데 그렇다 한들, 이 둘은 두부 자르듯 ‘숭덩’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은 언제나 상업적인가? 반대로 예술은 상업적이지 않은가? 디자인은 작업자의 자아가 투영되어서는 안 되는가? 예술은 언제나 작업자의 자아가 투영되는가?


이런 반례가 이어지면 “디자인과 예술은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더 이상의 궁금증을 봉쇄해버리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디자인은 대체 무엇인지, 그 대척점에 서있(다고 쉽게 전제되곤 하)는 예술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보고 나름대로 정의해 본 사람만이 디자인과 예술의 관계를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이 무엇인지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시리즈를 통해 정리하는 과정이므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먼저 이번에는 예술의 역사를 간단하게 짚음으로써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한자: 藝術, 영어: art, 그리스어: technē, 라틴어: ars, 독일어: Kunst, 프랑스어: art)은 본래 어떤 물건을 만들어내는 등 일정한 과제를 해낼 수 있는 숙련된 능력 혹은 ‘기술’을 의미하였다. 특히 한자어 예술(藝術)의 경우 형이상학적 원리를 형이하학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어떤 문화권에서나 ‘예술’과 ‘기술’은 하나로 결합된 형태였으며, 둘 사이의 구분은 없었다. 따라서 (기술이라고도 불렀던) 예술은 그릇과 양탄자에서부터 음악, 춤, 의식, 건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상의 영역’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 서양열강의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에서 탈취해 온 ‘예술품’(혹은 일상품이었던 것)을 전리품으로 박물관에 전시함으로써 ‘예술’을 ‘일상’과 분리하였으며, 이를 관람의 대상으로서 ’고상한 것’, ‘고차원적인 것’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엘 리시츠키, 라슬러 모호이너지와 같은 위대한 선구자들(!)은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요구에 책임감을 느끼고, 본래 예술가였던 이들은 최초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변신하게 되었다. 예술이 지닌 언어, 즉 조형의 언어를 사용하여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예술’을 다시 대중들의 ‘일상의 영역’으로 되돌려준 것이다. 분리되어 있던 ‘예술’과 ‘일상’이 다시 결합한 것이다!


누군가는 동의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분노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예술의 그 본연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오늘날 ‘예술’에 가장 가까운 모습은 ‘디자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참고도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 예술」, 유정미, 「그래픽디자이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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