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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is unexpected Sep 06. 2023

3. 디자인과 예술: b. 예술적 경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예술은 관람자의 ‘예술적 경험’을 전제로 창작된다. 바꿔 말하면 ‘예술적 경험’ 없는 예술은 예술로서 존립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술적 경험’의 특성은 (관람자의 지나온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대상에 대한 ‘총체적 포착’에 있다. 예를 들어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시리즈를 감상할 때, 관람자는 작품의 규모, 붓터치, 붓터치 속에 뒤섞인 다양한 유화 물감의 색채와 덩어리감 등을 순식간에(!) 하나로 엮어내는 ‘총체적 포착’, 즉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된다.


한편 창작자인 클로드 모네는 자신의 일본식 정원을 거닐며 느꼈던 ‘느낌’ 혹은 ‘심상’(이러한 느낌이나 심상을 존 듀이는 ‘질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했다.)을 표현해 내기 위해 <수련 연작>을 이루는 요소들, 즉 작품의 규모, 붓터치, 물감의 색채와 덩어리감 등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원래는 서로 관련성이 없이 존재하였으나, 모네에 의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엮어졌고, 관람자는 이러한 요소들을 다시 하나로 엮어내는 ‘총체적 포착’, 즉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적 경험’의 총체성은 여러 개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전시장에 전시되는 예술 작품들은 보통 큐레이터에 의해 선별되어 전시된다. 큐레이터는 어떠한 주제의식(모네가 자신의 일본식 정원을 보며 느꼈던 ‘그 느낌’, 혹은 ‘심상’. 듀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질성!’)을 가지고 작품들을 선별하여 전시한다. 관람자가 작품들을 통해 이러한 큐레이터의 주제의식을 일관되게 잘 느낄수록 좋은 전시가 되며, 이는 곧 좋은 ‘예술적 경험’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네가 서로 관련 없던 요소들을 선택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내었듯, 큐레이터 또한 서로 관련 없던 작품들을 선택하여 ‘하나의 전시’로 엮어내고, 관람자는 개별 작품들에 대한 감상을 하나로 엮어내어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네의 ‘예술 행위’와 관람자의 ‘예술 감상’을 통해 ‘예술적 경험’이 발생했듯, ‘디자인 행위’와 ‘디자인 감상(?)’에도 ‘예술적 경험’이 존재한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디자인도 그것을 이루는 요소들이 있다. 디자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글이나 이미지가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도형, 색, 질감(texture), 그것들의 배치(layout) 등이 있다. 또한 결과물의 특성에 따라 촉감, 후감, 청감, 미감, 공간감까지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원래는 서로 관련성이 없었으나, 디자이너에 의해 하나의 ‘디자인’으로 엮어진다. 또한 대중은 이러한 디자인을 이루는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어떠한 ‘느낌’ 혹은 ‘심상’, ‘질성’을 포착해 내는데, 이것이 ‘예술적 경험’이 된다.


디자인에 있어 ‘예술적 경험’의 총체성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규모가 커질수록 더 입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한 뮤지션의 공연을 위한 디자인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위해 홍보 포스터, 홍보 영상, 공연 무대뿐만 아니라 공연일까지 공연을 상기시키는 것, 입장과 퇴장, 공연장에서의 이벤트를 포함하는 경험까지도 디자인할 수 있다. 공연 기획자와 디자이너에 의해 각 요소들은 뮤지션 자체와 그 공연의 어떠함, 즉 ‘질성’을 반영하여 표현된다. 그리고 공연을 예매하는 관람자는 공연에 대한 홍보물을 처음 접하게 된 순간부터 공연장에서의 퇴장과 이후에 발생하는 이벤트까지 공연과 관련한 모든 개별 요소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총체적 포착’을 하게 되고, 이것이 뮤지션 공연에 대한 관람자의 ‘예술적 경험’이 된다.


디자인에 있어서 이러한 ‘예술적 경험’은 요즘 ‘브랜드 디자인’, ‘브랜드 경험’, ‘경험 디자인’이라는 용어 혹은 분야(?)로 둔갑하여 각광을 받고 있다. ‘디자인 감상’, 즉 ‘디자인 경험’에 있어서 일관된 ‘질성’을 포착해 낼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디자인이 얼마나 ‘예술적’인지, 그리고 좋은 디자인은 반드시 ‘예술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도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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