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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is unexpected Sep 18. 2023

6. 디자인과 사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최범 선생님은 디자인의 용법에 따른 디자인의 여러 의미 중 오늘날 가장 지배적인 의미는 ‘근대적 생산 방식이 자리 잡은 이후 그 생산 과정에서의 조형적 결정 또는 그 산물’이라고 하셨다.


‘근대 산업사회의 조형적 실천’으로서의 디자인은 다시 세 가지 형태로 분화되었다. 대량 생산(mass production)에 대응하는 산업 디자인(industrial design, product design), 대중 소통(mass communication)에 대응하는 시각 디자인(visual design, communication design), 그리고 인공 환경(artificial environment)에 대응하는 공간 디자인(environmental or space design)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현대에는 인간 공학, 산업 공학, 인지 심리 등 다양한 인접 분야에서 원리나 방법론을 빌려와 사용자 경험 디자인, 공공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등 새로워 보이는 형태의 디자인이 나타났다.


이처럼 디자인은 날마다 그 형태가 확장하고 새로워져서 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는 본질적인 무언가는 찾기 힘들어 보일뿐더러,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처럼 보인다.


관련하여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디자인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질문에 사로잡혀있던 학부생 시절 마침 학교를 찾아오신 한 유명한 강사분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이분은 미국의 손꼽히는 디자인 대학의 교수로 계시며 또한 마찬가지로 손꼽히는 디자인 협회의 회원이셨다. 두 시간여의 열강이 끝난 후(강의 내용은 5년이 지난 지금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질문을 하기 위해 긴 줄에 합류했다.

내가 물을 질문은 단 하나였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대체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하나로 묶는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있을까요?” 답변은 간단했다. “글쎄, 그런 게 있을까요? 쓰-읍. 없을 것 같은데.”(답변의 어투, 어절과 어절 사이의 호흡까지도 5년이 지난 지금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교수님은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으신 분이었지만, 나는 그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때나 지금이나 뭣도 아닌) 내가 그 무언가 본질적인 것을 기필코 찾아내리라 결심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뭣도 아닌) 내가 ‘디자인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다니며 몇 가지 실마리를 얻었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디자인은 ‘사람’에 대한 행위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에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닌 것들을 찾기가 더 힘들 만큼 싱겁고도 포괄적인 말이지만 또한 그만큼 간과하기 쉬운 부분일 수 있다.


글의 초입에서 살핀 바 디자인은 크게 산업 디자인(industrial design, product design), 시각 디자인(visual design, communication design), 환경 디자인(environmental or space design)으로 나뉘며, 현대에 들어 필요에 따라 이들 안에서 혹은 다른 분야와 융합한 사용자 경험 디자인, 공공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등도 나타났다.


디자인 과정이나 결과물이 상이하게 다른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것은 이들 모두 ‘사람’에 대한 행위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지난 다섯 번째 글에서 정의에 대해서 살핀 것처럼 정의는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이 속한 상위 집단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 안에서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이 다른 대상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으로 ‘디자인은 사람에 대한 행위와 결과물이다’를 더욱 구체화해보려 한다.


먼저는 ‘어떻게’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다. 디자인은 ‘형태를 통해’ 사람과 상호작용한다. 산업 디자인의 영역에서 디자인 결과물은 규모, 덩어리감, 재질, 색상 등의 형태를 통해 사람과 상호작용한다. 시각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결과물은 규모, 도형, 색상, 질감(texture), 배치(layout) 등의 형태를 통해 상호작용한다. 환경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결과물은 규모, 빈 공간과 채워진 공간, 색, 질감 등의 형태를 통해 상호작용한다.


다음은 사람의 ‘무엇에’ 대한 것인지를 이야기해 볼 수 있다. 디자인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 대한 것이다. 몸이란 디자인은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반영하는 조형적 행위라는 것이다. 산업 디자인과 환경 디자인에서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서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르 코르비지에의 저서 「모듈러(Le Modular)」가 한 예이다. 시각 디자인 또한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과물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상호작용할지 따위도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하는 과정이다.


마음이란 사람과 디자인 결과물의 상호작용에 있어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사람의 인지에서부터 그에 대한 반응까지를 염두에 두고 계획하는 조형적 행위가 디자인이라는 말이다. 산업 디자인은 행위 지원성(affordance)이나 기표(signifier) 등을 통해, 시각 디자인은 게슈탈트 원리(gestalt principles)나 몽타주(montage) 등을 통해, 환경 디자인은 공간에서의 경험(user experience), 길 찾기(wayfinding) 등을 통해 사람의 마음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를 계획한다.


‘디자인은 사람에 대한 행위와 결과물이다’라는 명제를 ‘어떻게’와 ‘무엇’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살펴본 바를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디자인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 대해, 형태를 통하여 상호작용하는 행위와 결과물이며, 이를 통해 신체적/정신적 반응을 의도한다.



*참고도서: 최범, 「디자인 연구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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