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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pr 12. 2024

내 딸이 75세에요(100세 시대)

진료실 이야기



© alexharvey, 출처 Unsplash

지금 병원에서 일한 지 거의 1년이 되었다. 1년 정도 되니 환자분들과도 많이 친해진 것 같다. 

나는 환자분들의 얼굴과 이름이 익숙해지고, 환자분들은 나에게 일상적인 이야기, 소소한 이야기, 힘든 이야기까지 하시는 분이 늘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안과 수술을 해야 한다고 수술전 검사를 하러 오신 분이 있었다. 결과를 듣는데 빈혈이 있어서 빈혈검사를 추가로 해보자고 했다.

" 나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 느낌도 없어. 그냥 좀 수술하게 해줘요."

라고 하시는데 왜 검사를 해야하는지 설명을 해드렸더니 갑자기 가족 이야기를 하신다.

짧은 진료 시간이라 많은 이야기는 못하지만 내가 설명하는 동안 틈틈이(?) 해주시는데 아들을 일찍 보낸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마음이 아프다. 우리 인생에는 마음 아픈 일이 없을 수가 없나 보다.

그리고 나가시면서 한마디를 던지신다.

"내 딸이 나이가 얼마인 줄 알아? 75세에요."

할머니 딸이 우리 부모님, 시부모님보다 많다. 아들, 딸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는 92세시다. 혼자서 약 타러 잘 오시고 수술도 혼자서 받으러 다니신다. 아직 소녀 같은 시고 고우시고 정정한 모습이다. 

" 얼른 죽어야지. 죽지도 않고 내가 살아있어. 나 90세도 넘었고 애가 나보다 먼저 죽고 75세인 딸도 있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 아니에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여전히 고우세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할머니를 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우리 할아버지도 90세부터는 내가 고향에 가면 항상 이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우리 동네에 누가 남았는지 알아? 저 다리 건너 OO 도 죽었고, OO도 죽었고... 지난주에 OO 갔다. 

나도 이제 가야지."

말씀을 그렇게 하셨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 앞에  친구들도 만나시고 우리 오면 빵집에 가서 빵도 사서 손주들도 먹이시고 그렇게 정정하셨던 모습이셨다. 


또 작년에 왔던 한 할머니는 자녀를 부양하면서 사셨는데 자녀가 65세로 기억한다.

"우리 딸은 시집도 안 가고 내가 입히고 먹이고 이렇게 살고 있어요. 독립 좀 했으면 좋겠어."

라며  이야기하다 가시곤 했다.


이제는 60대는 청년 같고, 80대도 젊어 보이는 분도 많다. 그리고 환자분들 중 걸어서 혼자 병원에 오시는 90대이신 분들도 많다.  그 모습에 두 가지를 본다. 흔히 말하는 혼자 사는 노인 가구의 증가를 피부로 느끼고, 또 나이가 들면서 만성질환은 많지만 정정하게 혼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도 많다는 것. 

이 시대는 정년이 65세인데 100세까지 남은 35년의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절로 들고 노년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계속 일하고 싶으면 일을 하고 만나고, 사랑하고, 또 존경받는 시대가 되기를!


나는 그것을 위해 환자를 치료하는 일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역시 사회적인 기반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일을 찾아봐야겠다. 물론 내가 먼저 잘 건강하게 늙어가는 게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얼마 전 이제 만 70세이신 우리 시어머님께도 말씀드린 적이 있다. 

"어머니, 삶을 책으로 내세요. 어머니는 강연 다니셔도 잘할 것 같아요."

라고... 어머니는 간증 집회의 스피커로 가더라도 몇 시간을 이야기할 만한 스토리가 있는 분이다.


맞다! 생각해보니 우리 언니가 오래전 엄마가 책을 한 권 써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시어머니 뿐 아니라 우리 엄마도 스토리가 많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모두 책을 한 권씩 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80세, 90세가 넘으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고 실패와 극복기, 영화 같은 이야기가 많을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자 다음 세대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사업은 어떨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젊은 사람들이 도전을 받고 존경을 더욱 하게 되며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dani_franc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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