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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Mar 17. 2022

똥에 대하여

진료실 이야기





© cys_escapes, 출처 Unsplash


똥에 관하여



똥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들은 똥 이야기를 신기할 정도로 좋아한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모두 똥과 방귀 가릴 것 없이 좋아하고 열광한다. 어렸을 때 나는 똥을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나는 시점부터는 똥은 더럽다는 고정관념이 생긴 후였으니 말이다. 내가 어릴 적 똥을 어떻게 생각했든 상관없다. 나의 어린 아들을 보니 아이들은 똥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니 말이다.



8살 아들은 똥 이야기가 나오면 무엇이 그렇게 웃기고 재미나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쿠키 만들기 하면 똥 모양 쿠키를 만들어낸다. 어느 날 하늘에서 음식이 내려오는 내용의 동화책을 읽고

"하늘에서 뭐가 내렸으면 좋겠어?"

라고 물으니 똥이란다. 그리고 하늘에서 똥이 내리는 그림을 그리는 엽기적인 모습까지 보여 준다. 특히 '똥침' 하면 좋아서 웃느라 뒤로 넘어갈 정도다.



똥 이야기하니까 문득 레지던트 때 생각이 난다. 그때 내가 담당하던 병동은 장기간 입원해 있어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으니 변비도 많았다. 회진을 돌면서 환자가 변비가 생겼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럴 때면 인자했던 한 교수님은 항상 나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었다.

"오늘 이 분 핑거 에네마(finger enema) 해주세요."


보통은 변비약을 주기도 하는데 교수님은 항상 핑거 에네마를 하라는 미션을 주시곤 했다. 교수님께서도 레지던트 때 많이 했다고 하셨다.

“이거야말로 레지던트 생활의 진수지.”

라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하기를 바라셨다.


그럼 나는

"네 교수님."

대답 후 회진을 돌고 교수님이 내주신 미션을 급한 것부터 수행한 후 환자분을 따로 찾아갔다.


여기서 finger enema란 한국말로는 '손가락 관장'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장갑을 끼고, 젤을 바른 후 환자의 대변을 내 손으로 파내는 것!


이걸 하면 정말 대량의 묵은 변들이 나와서 더러움도 잊고 내 마음조차 시원해지기도 한다. 똥이 나오면 환자도 당연히 좋아하지만 보호자도 함께 기뻐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때로는 좋아서 우는 환자도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 관장이 100퍼센트는 아니다. 잘 안 나오는 환자도 있다. 어떤 분은 파내도 파내도 너무 딱딱해서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똥이 아니라 만지면 딱딱하고 까만 돌덩이가 나온다. 똥과 씨름하다 보면 똥 하나 잘 누는 것도 정말 행복한 거구나 생각이 저절로 든다. 세상에는 온갖 질병이 있지만 변비도 역시 그 고통은 변비가 없어본 자는 아마 모를 것이다.



 

똥누는 것 하면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대장암 환자분들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변이 잘 안 나와서, 혹은 대변이 가늘어져서 병원에 왔다가 대장암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암덩어리가 대변이 나오는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각나는 환자분 한 분은 대장암으로 수술을 한 후 장루를 내었다가 다시 장루 복원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어느 날처럼 수술 부위 소독도 해드리고 회복 상태를 확인하러 갔더니,

"선생님, 저 장루 복원 수술을 한다니까 너무 기뻐요. 너무 좋아요..."

라며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아닌가. 환자분과 수술 이야기를 하며 내 마음도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대장암이라는 큰 수술을 하고 이겨내고 있는 가운데 어떻게 장루 복원 수술 하나로 이렇게 행복한 웃음을, 감사의 눈물을 지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고통 중에는 불평하고 좌절하기는 쉽지만 감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감사이다. 고통 중 발견한 행복은 소소할지라도 울림이 있는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장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기쁨이고 감사이기에. 고통도 찾아오지만 덤으로 인생의 행복해지는 원리를 발견하는 인생의 심화 과정을 같이 이수하게 된다. 작은 것에서 발견하는 감사와 행복. 그때 그 환자분의 말씀을 들으며


"작은 것에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했던 기억이 한참 잊고 있다가 오늘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숨어 있던 감사가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어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똥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환자를 보고 아이를 키우며 똥이 더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아이의 똥은 예쁘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이의 똥을 치우면서 더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환자분들의 소변, 대변도 더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비위가 좋다기보다 그게 일상이고 너무나 당연해서 그랬던 것 같다. 마치 피가 무서운 것이 아니듯 똥도 더러운 것이 아니다. 나의 몸 안에서 만들어져 나가는 똥이 사실을 환영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환자들을 만나며 깨닫게 된다. 의사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해 일상을 살아가는 것, 즉 먹고, 싸고, 걷고, 밤이 되면 자는 것을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해내는 별 일 아닌 일들을 못하게 된 환자들이 그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똥을 주제로 쓰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힘든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들 모두 오늘 내가 화장실에 가서 스스로 대변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로 바라보며 작은 미소 지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료실이야기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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