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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pr 19. 2022

진료실 이야기

병원에 오고 싶은 환자, 병원에 오고 싶은 의사



© jannerboy62, 출처 Unsplash




#병원에오고싶은환자

병원에 오면서 오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아마 한 명도 없을 게 분명합니다.

저도 내가 병원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병원에 절대 오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병원은 좋은 일이 있어서 오는 곳이 아니라 아파서 오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병원에 오고 싶다고 말씀해 주시는 할아버지를 만났지 뭐예요? 

제가 지금 있는 병원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잠깐 배가 아프거나 감기에 걸려서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장기적으로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2/3 이상을 차지해요. 특히 당뇨, 고혈압 환자분들이 많고요, 또 65세 이상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더 많아요.

하지만 반전은 요즘 너무 젊고 아름다우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서 나이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어떤 분은 60세 같은데 차트 보면 80세이시고

어떤 분은 30-40대 느낌인데 차트에는 60세라고 나와요.

저만 늙는 건가요…? 

병원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자주 보니까 정도 들고 친해지게 되는데 며칠 전 당뇨로 약을 드시는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가 들어오셨어요.

그런데 먼저 하시는 말씀이 

" 이제 죽어야지, 나는 얼른 죽어서 부인 곁으로 같으면 좋겠어."

라고 하셔서 언제인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부인과의 사별이 있었음을 알았지요.

그리고 많이 그리워하고 있고 쓸쓸하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어요. 

약 잘 복용하실지 걱정이 되어

“ 오늘 드린 약 안 빼먹고 오시기로 저와 약속해요.”

했더니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시고(원래 저 이런 행동 잘 안 하는데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었어요)

“ 나는 혼자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병원 오는 날이 좋아 즐겁게 기다려져.”

라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약속까지 하니 제가 딸 같다고 좋아하셨어요.

어쩌면 저에게 진료받으러 병원에 오시는 분들 중 병원을 좋아하는 분은 할아버지 한 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병원이 오기 편해지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 말을 해주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어떤 말을 하느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서로 영향을 많이 준다는 것을 느껴요. 그 한마디에 제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보면요. 

때로는 많이 기다렸다고 진료실 들어오면서 욕을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욕을 들으니 사람인지라 잠시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때로는 환자가 너무 많이 지쳐서 집에 가면 아무 생각 없이 누울 때도 있고요. 

요즘 말투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 아이를 양육할 때, 일을 할 때, 사람을 만날 때 똑같은 말을 해도 어떤 태도와 말투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리지는 경우가 많은 것을 느껴요.

즐겁고 배려하는 말을 통해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병원에오고싶은의사

저는 사실 병원에 오고 싶어 하는 의사예요.

아이가 학교생활을 힘들어하고,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를 너무 찾아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파트타임으로 바꾸어서 일을 했어요.

몇 시간만 일해서 그런가, 더 병원에 오는 시간이 좋아요.

다른 선생님들, 간호사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보람이 있어서 좋고요,

또 환자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서 좋아요. 살아 있음을 느끼고 생기를 느껴요.

물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요. 

학교 다닐 때부터 교수님들이 수없이 말씀하시는 이야기가 있어요.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있는, 

"환자의 최고의 스승이다."

라는 말이에요.

환자를 보면서 저는 좋은 의사가 되어 가고 배워요. 의학적인 것도 경험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또 환자들을 말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요.

때로는 쉬는 토요일에도 

"몇 시간 아침에 일하는 게 나는 생기 있고 좋더라."

라는 말을 했다가 남편이 기겁하기도 했어요. 

이 말을 한건 제가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고 사람들을 만나면 생기가 나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 사람들 만나고 자연에서 걷고 그러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힐링도 되고 그런 성격이거든요. 

병원에 오고 싶다고 말해주는 환자분이 있어 감사하고, 제가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런 저를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때로는 슬픈 이야기만 늘어놓을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해봅니다.


#진료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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