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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텅빈전단지 Jan 30. 2022

호텔 면도

결과가 아닌 과정이 목적이 되는 삶

  출장 중 호텔 투숙할 경우 일부러 짬을 내서 면도를 하곤 합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동안 욕실은 습도가 한껏 높아집니다. 넓어진 모공에 면도 크림을 골고루 발라 줍니다. 호텔 어메니티 박스에 들어 있는 싸구려 면도기가 서걱서걱 소리를 내면서 거칠게 수염을 깎아 냅니다.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음악도 틀어 줍니다. 호텔 조명이 훤하게 밝아서 거울 속에 나는 더욱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싫지는 않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롯이 나와 수염과 면도기의 시간입니다. 잡생각이 없어지는 이 시간이 참 좋아서 출장 시 일과의 마무리 루틴이 되었습니다.


  면도용 거울을 보며 칼날의 방행을 아래위로 하여 꼼꼼하게 움직였지만 꼭 한두 군데 정리되니 않은 곳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수염이 목적이 아니라 호텔 면도하는 과정이 즐거웠으니까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일의 결과에 목적을 두는 삶은 피곤합니다. 결과가 나쁘면 후회가, 좋으면 좋은 대로 또 다른 아쉬움이 남습니다. 반면 과정이 중시되는 삶은 만족도가 높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행위를 통해 높은 확률로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러한 구체화된 행위들이 많아진다면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려서부터 결과에 비중을 두고 평가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과정을 찾는 것에 서툰 것 같습니다. '은퇴하면 세계여행을 가야지' 같이 미래의 행복을 계획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위의 '호텔 면도' 나 '커피와 먹으면 맛있는 초콜릿 사기' 등 시답잖은 것 들이라도 소소한 행복들로 삶을 채워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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